마흔-908 마음 씀의 깊이

인간관계

by Noname

북한산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한두 달에 한 번은 혼자서 북한산에 있는 카페에 가서 한두 시간 있다 오는 게 즐거움이랄까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북한산 뷰가 멋질 것 같았던 스타벅스에라도 가야 하나 찾아보다가 잠이 들었다.


5월까지 회사에 다닐 땐,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했는데

퇴사하고 6월부터는 독기가 빠져서인지(물론 어젯밤에는 전 직장 관련 악몽을 꿨지만;;)

아침 9시까지 푹 잔다.


눈만 끔벅끔벅거리고 있는데,

근처에 사는 언니가 연락이 왔다.


"상아야 오늘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하지만 오늘 시간 돼? 내일 만나자고 하려고 했는데 회사 일이 생겨서"


"언니, 당연히 되지"


언니는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언니 옆에 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로에서의 북한산 뷰를 핸드폰으로 찍는데, 혼자 운전할 때도, 너무 좋아서 신호만 걸리면 매번 찍는다.


"옆자리에 앉아서 운전 신경 안 쓰고 찍다니!!! 언니 너무 좋아!!!"


그리고는 맛있는 갈비를 사주고, 북한산 봉우리들이 멋지게 보이는 카페에 데려가 줬다.


그리고 일전에 지나가는 말로 말한 오설록 티까지 손에 쥐어주곤 다시 집에 데려다줬다.


사실 언니가 나를 이렇게 챙겨준 건 대학생 때부터이다.

두루두루 친하고, 여러 그룹에 끼어서 잘 놀지만,

그렇다고 어디 한 군데에 진득하니 어울려 다니진 않았다.

그냥 그때그때, '상아야 뭐해?'하고 물으면 내키면 같이 놀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었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누가 필요할 때도 누구도 찾지 않는 건 나의 고질병이다.

어린 시절, 가난하고 힘들어 자식을 챙길 여력이 없던 부모님께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내가 속상해서, 혹은 아파서 도움을 청할 때,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작고 어린아이였던 나는 '이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나 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는지 딱히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언니는 내가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려고 하거나, 기어 들어가 있을 때,

'상아야, ' 하고 불러준 인생의 은인이다.


대학생 때에도, 직장을 다닐 때에도, 기술사 공부를 할 때도, 지금도 늘 그렇다.


기술사 공부를 할 때, 언니도 공부할 게 있다고

같이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는데,

학교 축제 때, 술 먹고 도서관에서 대자로 누워 자던 이야기를 키득 거리며

주고받는 사이 자연스럽게 살짝 흘린 힘든 이야기에

"상아야, 아사다 마오가 되지 말고! 김연아가 되는 거야!" 하면서 응원해줬었다.


내 공부 노트 맨 앞장에 언니의 말이 적혀있었다.

그 힘으로 경쟁하지 않고, 탁월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잘하려고 노력했던지.


인간관계를 두루두루 유지하는 건 중요하지만,

내게 중요한 사람은 분명 있게 마련이다.


20대의 나라면,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그게 누구든 달려갔겠지만

이제 힘들다고 습관적인 하소연을 하는 그 누구에게도 달려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나의 위로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30대에 와서는 인간관계에 지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덕에 지금의 나는 사람이 마음을 쓰는 깊이가 어떤 건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 만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씀의 깊이를 보게 된다.


물론, 마음씀의 깊이는 내가 써 본 만큼밖에 몰라서,

더 깊고 심오한 마음들은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친구가 추천해준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유튜브에서 요약으로 봤는데 그런 말이 나오더라

"인간관계가 노동이에요."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런 것 같다.

사소한 카톡 하나도 버거운, 그런 상태 말이다.


물론, 내 기준에서 마음의 결이 비슷한 분들은 예외이지만...


자, 아름다운 마음의 힘을 받았으니, 힘내서 이 프레임을 걷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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