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902 저는 딱히 무교입니다.

저는 다 믿어요.

by Noname

종교가 있는 분들은 어김없이 종교가 있는지부터 물어보곤 한다.

템플스테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당당하게 무교라고 이야기한다.


무교라는 말에 흔히들 말하는 '공부가 된' 분들은 왜 종교가 없는지, 종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종교도 없는'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종교라기보다는 어떤 사상가, 어떤 철학가, 선지식인을 믿는다.

부처나 예수나 모하마드의 신화가 어찌 됐건 그들의 사상 혹은 말을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가르침이 시스템화 되고, 재구성되고, 재해석된 종교는 갖지 않는다.


10년 전쯤, 영화 '무산일기'에서 탈북자를 편견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용하는 기독교가 잠시 비친 뒤로 기독교에 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세네갈에서 선교사님 가족분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기독교인이 될 뻔도 했지만, 어쨌든 난 종교인이 되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숫타니파타'를 읽고, 법정스님의 말씀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지만

나는 다시 '데미안'으로 돌아간다.


템플스테이를 두 번째 가보지만 예불에 참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면 참가했었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뭔가 '반야심경' 가사가 적힌 코팅된 종이를 어디선가 본 것도 같긴 하다. 7년 전 갔던 화엄사 템플스테이에서 내가 과연 예불에 참가했던 걸까.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7년 전과 매우 다른 점은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거.

그런데 이상하게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무당이셨던 우리 외할머니는 새벽 6시경이면 이러다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야심경'을 정말 큰 소리로 틀어놓곤 하셨다.

절에 켜져 있는 LED초를 보면서, 우리 외할머니 법당은 매일매일 초를 켜 두고, 향이 켜져 있고, 불이 꺼지지 않게 할머니께서 그렇게 정성 들여 봐주셨었는데, 촛농이 한가득 녹아 흘러내린 초들의 모양새가 떠올랐다. LED초가 있었으면 할머니가 좀 편하셨을 텐데.


언젠가 회사 언니들을 따라 신점을 보는 곳에 따라갔었는데, 그분이 오히려 내게 역질문을 하면서(물론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외할머니께서 기도를 정말 많이 하신 거 같다고, 살아계실 때 정말 잘해드리라고.(2009년 경이니까. 갑작스레 돌아가시기 1년 전이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종종 이유 없이 반야심경이 듣고 싶어 유튜브에서 영인 스님의 '반야심경'을 듣곤 했지만, 누군가 직접 외는 염불을 듣다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바로 넘어간 '천수경'

내 딴에 스스로 지은 죄가 많아 요즘 마음이 불편하여 사람을 피했나 보다.


십악참회를 따라 읊조리며, 절을 하다가 다음 구절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났다.

코끝이 식초라도 들이 부은 듯 시려 차마 발음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 理懺悔偈(이 참회 게)

罪無 自性 從心起 죄무 자성 종심기

心若 滅是 罪亦忘 심약 멸시 죄역망

罪忘 心滅 兩俱空 죄망 심멸 양구공

是卽 名爲 眞懺悔 시즉 명위 진참회


죄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만약에 소멸해버린다면 죄도 또한 소멸한다.

죄도 없어지고 마음도 소멸해서, 죄와 마음이 함께 다 공해 버렸을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사실 나는 마음이 여리다.

스스로 강한 척을 해서 모두가 강하다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하면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정말 그 말을 하기 전부터 수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말을 하고도,

몇 날 며칠을 앓는다.


그래서, 나는 애정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인간관계가 아닌 이상, 말을 아낀다.


그 모든 아픔과 그 모든 죄를 내가 만들었다.

내가 스스로 그 양날의 검을 두 손에 꽉 쥐고, 상처를 내가며 곱씹고, 곱씹어 피를 철철 흘리다가

차마 누구도 가까이하지 못하고, 나는 나쁜 사람이다. 동굴 속에 숨는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행복하게 웃을 자격이 없다고,

20살 어느 시절엔 술에 취해 친구들과 놀다가, 한순간 '나는 행복하면 안 돼'하고 그 자리를 떴다.



나는 참, 스스로에게 참회할 일이 많다.

평생을 죽은 동생이 내가 죽이기라도 한 마냥, 죄인 취급을 했다.

죽은 동생은 말이 없는데,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탓하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사실은 그때, 친척 언니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 네가 동생을 돌보지 않아서.'라고 울면서 말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7살인데


일체유심조라 하지 않던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동생을 돌보지 않은 탓을 그 언니의 입을 빌어 내가 본 건지도 모른다.



그 죄를 만든 건 나이다. 뭘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 죄를 만들어 평생을 불편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죄와 불편함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혀야만 편할 정도로, 전생에 쌓은 업이 많은가 보다.

아마, 그 전생은 엄마가 오빠와 동생을 잃고, 본인 또한 본인 탓과 원망을 들어야 했던 그 시절 인지도 모른다.


윤회라는 건 이렇게 돌고 도니까.

윤회는 작은 나의 뇌로는 매우 과학적이다.


생존과 연계된 치명적인 기억이나 습관은 기억에 박힌다. 기억은 단백질 세포에 저장이 되고, 다음 세대에 전해지기 위한 주요 생존 정보로써 채택이 되면 그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최면을 통해서 내가 본 엄마의 갓난아기 기억과 같이, 치명적인 생존 정보는 자식 중 누구 하나에게 전해진다.


또한, 작은 범주에서 내가 습관적으로 일삼는 일들, 그리고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인간관계 구도는 내가 깨치지 못한 과제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과도 같은데, 이를 알아차리고, 관련된 것들을 끊어내면 더 이상 같은 현실이 창조되지 않는다. 이 또한 윤회를 끊는 일종이지 않을까.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매우 동의하는 1인이다.

그런 사람을 불교신자라고 하는 거라면 나는 불교신자인가 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성당에 가면 성모 마리아에게

교회에 가면 예수님에게

절에 가면 부처님 이하 모든 분께

강에 가면 하쿠에게!


나는 모든 신에게 공손히 기도하다가 또, 왈칵하고 눈물을 흘릴 테니, 굳이 정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스님과의 차담 시간 화두

1. 연기법,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연결되어있지 않은 것은 없다.

2. 알아차림의 목적은 무엇인가? 습관을 바꾼다.

3. 습관이란 무엇인가? 고양이와 올빼미는 밤에 잘 보도록 습관이 된 것, 인간은 밝을 때 잘 보도록 습관이 된 것, 보는 것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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