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891 매일 뭘 쓰던 친구

'라이프 온 어스' 작가 거북이님

by Noname

예전에 읽은 동화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숲에 불이 났는데, 동물들이 모두 불을 피해 달아날 때,

새 한 마리가 열심히 물을 날라다 붓고 있었다.


'새야, 그런다고 불이 꺼지겠니?'

'불이 꺼지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1. 거북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선발되어서 국내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빨간색 농구 유니폼을 입고, 짧은 머리에 흡사 중국인 같은 느낌을 풍긴 친구가 하나 있었다.


국내 교육을 받는 첫날, 각국으로 파견되는 봉사단원들의 이름을 호명하는데

내가 가는 세네갈은 총 13명이었고, 그중에 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날이 좋은 날이면 밖에 나와 휴대전화와 작은 키보드를 연결해서 매일같이 뭔가를 쓰고 있었다.

친구는 일기라고 했다.


요리 단원이었던 친구는 세네갈에 가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3명이나 되는 6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다 같이 밥을 지어먹다가 분란이 생기기도 했고, 나와 몇몇 친구들이 현지 적응 중에 아픈 일이 생기면 감자죽을 만들어주고, 세심하게 보살펴줬다.


각지에 파견된 후에도 어쩌다 내가 파견된 띠에스에서 모이는 날이면, 그 친구의 빠른 칼질 덕분에 평소 1시간 걸리던 식사 준비 시간이 30분으로 단축이 되었다. 그 친구가 해준 스파게티며 재료를 공수할 수 없어서 다른 걸 대체해서 맛이 좀 없을 거라고 했던 세상 맛있었던 짬뽕이며,


누군가가 무심하게 해 준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따뜻한 밥 한 공기는 시간이 지나도 언제고, 내 뱃속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던 그때처럼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인다.


어쩜 그렇게 세심하고, 친절한데 또 그렇게 티 내지도 않고, 참 속이 깊은 친구였다.


델프 시험을 보기 위해 친구네 집에서 머물 일이 생겼는데, 그렇게 깔끔한 집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집에 들어갈 때, 친구는 몸을 휙 돌려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들어갔다.


적당히 깔끔한 편인 나는 그 친구 덕에 그 요령을 배워서 지금도 몸을 휙 돌리고, 찰나 친구를 생각한다.


총 2년 파견 기간 중, 나는 아버지 병환으로 1년을 일찍 들어왔다.

그 즉시 에볼라가 발발하여 대부분의 단원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친구는 묵묵히 그곳에 남아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너는 남아 있을 줄 알았지.



친구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 케냐 대사관으로 갈 때, 연락을 했었지만 당시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던 나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그날, 대학교 도서관 지하에 덩그러니 장식되어있던 크리스마스트리와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던 그 장면이 아직도 깔깔한 사포처럼 내 마음을 긁을 때가 있다.



세네갈을 떠나온 이후, 친구를 만난 적은 한번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SNS도 끊겼다가 어느날 인스타에 등장한 친구는 거제도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플러깅'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다시 제주도에 있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것과, 쓰레기를 줍는 것

친구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내가 가지 못한 길을 먼저가 있었다.


환경운동가로, 이번에 '라이프 온 어스'라는 책을 냈다.

사서 볼 수 없는 책이라고 하니, 친구에게 꼭 읽어보고 싶다고 메시지를 넣었다.

'책 앞 장에 꼭 사인해줘야 해!!'



생각한 대로 살아봅시다! 응원합니다.


2. 나의 이야기

내가 외면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걷어 올려졌다.

초등학교까지 시골길 15분 거리, 나는 40분을 넘게, 걸었다.

길거리의 벌레들과 풀들과 꽃들과 하늘과 바람과 밤에는 별까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인사하고, 나 나름대로 시를 짓으며 그 길을 사유했다.


아빠와 같이 보던 프로그램은 '동물의 세계', 혹은 자연 다큐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세렝게티'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팬이 되었다.


나의 로망은 아프리카 사막에서 펭귄 인형들과 함께 어린 왕자를 원서로 읽는 것이었다.

그 로망은 세네갈에서 어린 왕자 원서를 통 번역하여 함께 간 펭귄 인형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완결을 지었다.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20대부터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옷을 잘 사지 않고, 한번 산 물건은 쓰지 못할 때까지 쓰고,

애플 제품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종이 채을 줄이기로 했었는데, 눈에 노안이 오면서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오긴 했다.

하지만 종이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인생에 반복해서 읽어야 할 책들만을 구매했다.

지금은 도서관 대신 윌라를 듣고 있지만 말이다.

면허도 그런 연유로 2019년도에야 취득했다. 그전까진 평생 자전거만 타기로 맹세를 했었다.

맹세는 깨졌지만 되도록 운전을 할 때도, 초록색 에코 등이 활성화되도록 조절을 한다.

자전거 역시 2009년도에 산 미니 벨로이고, 그 당시엔 채식도, 노푸도 했었다.

면생리대를 쓴지는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생리 컵으로 교체를 해서 좀 더 쾌적해졌다.

언젠가는 일회용 생리대를 기부하는 캠 패이 너에게 면생리대와 같은 대용품이 있다며 열을 올려 제안을 한 적도 있다.

과자를 여간해선 사 먹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20대에 만났던 남자 친구들의 주머니는 나의 성화에 의해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산에 가도, 길거리를 걸어도 쓰레기를 보고 질색을 하며 줍는 나의 영향으로 남자 친구들은 내게 칭찬을 받으려고 늘 주머니 가득 주운 쓰레기를 보여주곤 했다.


혼자 살 때,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나오지 않아 6개월에 한 번 정도 버릴 일이 생겼다.

일반 쓰레기도 3달에 한 번 정도 버리는 편이었다.


언젠가는 여름에 여동생이 더위에 먹을 지경이 되어 내게 에어컨을 사자고 호소했는데,

빙하가 녹아가고 있어서 북극곰이 죽어가는데 그래도 괜찮냐며 말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동생은 그때 이야기를 하며, 나보다 북극곰이 소중하지? 하곤 한다.


세네갈에 갔을 때, 기후변화는 이미 코앞이었다. 이전 기수들이 그토록 사악하다고 했던 하마탄은 불지 않았다.

이미 그 전에도 '지구 사진전'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을 통해서 기후 변화는 너무도 가까운 재앙이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왜, 경각심을 갖지 않는지 몰랐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도중에 엘 고어 선생님의 '기후프로젝트'같은 곳에서 활동을 한 적도 있고,

환경기술사를 알아보기도 했고,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지만


이젠, 나 역시 경각심을 갖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꿀벌의 비행을 응원하겠다며 핸드폰을 꺼두고,

에코백 하나를 닳아헤질때까지 쓰고,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고,

종이 대신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대중교통도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던 그 시절의 내가 보면

'언니, 북극곰은 이제 안중에도 없는 거야?'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그냥 그렇고 그렇게 문명의 이기와 몸의 편안함을 위해 북극곰을 벽장에 가두었다.


오래된 친구들은 지금도 '초록'을 좋아하는 상아, '자연'을 사랑하는 상아, '북극곰'을 끔찍이 여기는 상아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일회용품을 쓴다거나, 분리수거를 대충 하거나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않지만, 분리수거를 한다고, 온갖 라벨 떼기를 하고 있지만

더 이상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다니거나, 쓰레기를 줍기 위해 산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친구가 제주도에서 플러깅을 매주 몇 회식하고 있었다.


내게는 냉소적인 면이 다분히 있어서, '이젠 늦었어. 자손을 만드는 건 인간 스스로 망친 자연에 소중한 생명을 내던지는 것과 같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들이 자연을 이렇게 망쳐놓고, 뻔뻔하게 기후협약 이야기를 꺼낸다는 자체에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그들이 보낸 쓰레기들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고는 싶은데...' 그 뒤에 붙는 핑계들과

'그런다고 달라지냐?' 그 뒤에 따라붙는 혐오감과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그 뒤에 따라붙는 증오와

그런 사람들에게 냉소적으로 쏘아붙일 때도 있었다.


'그래, 북극곰도 자연도태되는 거지, 지구는 자정작용 중인 거고, 적응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어. 인간이 그 최우선에 있을 거야. 기후변화? 지금도 지구 반대편 문명의 이기라곤 누려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단지 우리 몸의 편리함 때문에 물에 잠기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고? 지금 당장 편하면 그만인 인간들이 뭘 알겠어.ㅎㅎ'


하지만 그 혐오감과 냉소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나 역시 너무도 달콤한 문명의 이기 속에 몸을 뉘인 인간 중 하나였다.


인식하기 시작하면 불편해지고, 어잖아 지는 것들이 있다.

자연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너무도 진심이었었기에 더더욱 냉소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걸 말리지도 않는다.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마음 가득 혐오를 담기에는 내 삶이 너무 아팠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 선생님의 '나는 왜 바보가 되었나'에서 주인공이 그간의 골치 아픈 삶의 방식을 벗어버리고 잠시 바보의 삶을 사는 모습이, 꼭 지금의 내 모습과 같다.


이 냉소주의를 친구의 책이 녹여버렸다.



3. 생각한 대로 살아봅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친구의 싸인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친구의 글을 통해 엿본 친구의 삶 역시.

친구는 내가 되고자 했던 환경운동가가 되어있었고, 내가 행하고자 했던 '플러깅'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존경스러웠다. 생각한 대로, 흔들림 없이 삶을 살고 있는 친구가.


아프리카에 다녀와서 내겐 모토가 하나 더 생겼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세상을 돕자.'


꼭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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