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
대학생일 때, 일본문학을 꽤나 좋아했었다.
책을 고를 때는 대체로, 제목이나 촤르르 넘기던 페이지의 걸리는 부분을 읽어보고 골랐다.
처음 만났던 다자이오사무 선생님의 작품은 '달려라, 메로스'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그 책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내가 평생을 달고 사는 이 근원모를 수치심과 열등감
이 이후로, 인간실격을 알게되었고, 이 네 글자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말이었기에
마음 한켠에 또하나의 나로서 그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온전히 그 수치심을 견뎌낸 자의 삶
그 시절에는 그저 그런 비열한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그가 멋있게 보였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스러워보였다.
아마, 여자들이 그를 보고 느끼는 연민의 감정이 그런게 아니었을까.
다시 읽은 인간실격은
그의 순수한 영혼을 보게 해주었다.
그는 살아내기 위해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아기였을 때 생긴 정강이의 상처,
부모와 형제들로부터의 상처,
여자들로부터의 상처,
하녀들로부터의 상처,
가장 가까운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기만하면서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을 나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인간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들은 앞에서 웃고, 속으로는 비웃음을 자행했다.
그들의 겉과 속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인냥 너무나도 달랐다.
그 충격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20대에 인간실격을 읽지 않았다면 나 역시 알콜 중독이 되었을지 모른다.
잘 조율된 피아노 줄 처럼
대체로 나와 같은 사람의 감정선은 특히나 수치심과 죄책감과 열등감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여 증폭되곤 했다.
다자이오사무가 11남매 중 10번째였다니
존재의 수치
본문에는 '그는 매우 착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의 탓이다.' 혹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가져온 불행을 그렇게 낳아준 어머니의 탓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물질적으로 그를 만들어낸 부모의 탓이라는 건
그의 천성이 본래 그랬을지언정,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지 않은 부모의 양육에 관한 말일 지도 모른다.
인간은 저마다의 심연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심연의 깊이와 형태가 어떻느냐에 따라 그 심연을 스스로 견뎌낼 수도 있고, 견뎌내지 못할 수도 있다.
원을 360조각으로 나누고, 그 중 60개를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물들여 버리면 300개의 갖가지 감정은
손쉽게 수치심과 죄책감에 잠식된다.
내면에서 땅따먹기를 하는거다.
끊임없이
오로지 또다른 자기 자신을 이겨내면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