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키우기 게임 중
우연히 휴대전화 앨범을 보다가, iOS에서 생성해준 추억 폴더 제목을 보고 크게 웃었다.
제목이 '무럭무럭 자라기'
주로 내가 운동을 했던 사진과 영상으로 아주 멋진 영상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계속 그 제목이 웃긴거다.
20살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빠져서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했었다.
거의 반년을 그렇게 보냈나보다.
대학가서 살 빠지는게 아니라 대학가서 게임하다가 8kg이 빠졌다.
뭐하나에 빠지면 중독된 사람처럼 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외곬수 옹기장이셨던 부친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듯 하다.
"할거면 제대로 해야지."라는게 살아생전 아빠가 우리에게 했던 잔소리의 전부였다.
어쨌든 게임에 지나치게 빠졌던 나머지 살도 빠지고, 성적도 빠지고
게임을 관두게 된 계기는 두가지다.
먼저 게임을 적당히 하면 안 되겠냐는 당시 나를 부양하시던 이모님의 간곡한 자필 편지 한장,
다음으로 군대간 그당시 남자친구가 게임하느라 전화를 대충 받았다는 이유로 이별 선언
게임을 그만두고 내가 한 일은, 나를 키우는 일이었다.
와우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 모든 지형을 다 탐험할 수 있었는데,
이동 시간을 단축시키고자 맵의 온갖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산악 지형에서 뛰어내리기였다.
어쨌든 현실에선 산악 지형에서 뛰어내리진 못했지만 게임을 관두고 처음 생긴 취미가 산행이었다.
라떼는 말이야... 그 당시 20대는 산을 다니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10년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나는 이 시대에 안성맞춤인 극강의 MZ로 활개를 쳤을텐데
그리고는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역시 일일퀘스트를 하듯이 하루 정해진 운동량을 꼬박꼬박 채웠고, 그 덕에 날을 새고 논 후, 3시간 자고 일어나 산행을 다니는 강철체력이 되었었다.
취업을 해서는 마침 또 회사 협업 툴이 영문이었기에 모든 것이 퀘스트로 표기되었다.
정교한 관리가 가능한 툴이라 매우 체계적이고, 정형적인 프로세스를 탔다.
그러니까 산행, 운동, 회사일 모든게 나를 레벨업시키는 퀘스트였던 거다.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당일 목표를 달성하는 식의 방식으로
지금도 사실 모든걸 나 자신의 레벨업을 위한 게이지 채우기랄까.
매일 아침 수면체크를 하고, 모든 운동 내역은 기록하고, 독서를 하고 감상문을 쓰고
약속 역시 내게는 퀘스트의 일부이다.
월 몇건의 애정어린 만남은 이미 전년도에 정해놓은 나의 KPI랄까.
나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얘들은 내 마음속까지 훤하게 보는것 같단말이지.
어쩌면 사람의 뇌가 전기자극을 통해 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하기 때문에 뭔가 그 전기 자극과 전자기기, 특히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의 어떤 요인이 맞아떨어지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 때 아주머니들께서 "나는 삼성 제품만 사면 고장이 나더라."라는 식의 이야기 속 역학관계를 과학학습만화에서 얻은 지식으로 엮으려했던 나의 귀여운 상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