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상황과 사람과
"야.. 저 많은 아파트 중에 우리 거 하나가 없네."
10여 년 전 관악산 연주대에서 혼자 앉아있는데,
중년 부부분들께서 나눈 대화의 한 단락이다.
저 넓은 공간에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어디뫼요
지금이야 차를 팔았지만, 차가 있을 때만 해도 어딘가를 가려면 우선 주차장부터 알아봐야 했다.
내 작은 아침이 하나 쉴 곳이 어디인가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유휴 공간들이 플랫폼을 통해 활용되기 시작했다.
집을 대여하는 일부터, 짐을 보관하는 장소, 캠핑장의 사이트
모든 게 다 공간이다.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대여하는 사람이나, 그걸 활용하려는 사람이나 모두 제 각각의 목적을 갖는다.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특히나 더 공간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사람이 편안함을 갖는 거리는 친밀도가 낮을 경우, 1m의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중교통에서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기운을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기운이라는 걸 믿는다.
8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인간은 전도체이다.
각각의 생명체들이 내뿜는 전자기장에 영향을 아예 받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이 그 모든 파장을 0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평온해야 한다.
새로운 공간에 가게 되면 나는 그 공간에서 편안함이 나올 수 있도록 정돈하는 편이다.
나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테지.
어느 공간에서건 평정심과 평온함을 유지하며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쉽게, 나의 주의를 내어주는 일은 그저 내어주는 게 아니라
같은 공간 내의 '사물들'에게 에너지를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그러다 보니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명상을 어중간하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기운을 바로 느껴버리고 흡수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편안해진다'라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을 것을 내어주느냐 행동을 한다.
사실은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사람이 자신의 불안정한 기운을 가져가주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나만의 공간은 소중하다.
잘 길들여야 한다.
이어폰을 처음 사서 에이징을 하듯이.
작은 공간 하나도 허투루 버려두거나, 허튼 것으로 채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물질적인 공간의 편안함에 힘입어 나의 육체적, 정신적 안정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빅터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처럼 수용소에서조차 불굴의 의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아프리카의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정신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물질과 공간이 자신의 의지와 어긋날 경우, 어쩌면 정신수양이 더 잘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의지는 늘 그러한 덕분에 이룩한 업적보다 위대한 경우가 더 많다.
척박한 곳에서 자란 열매가 훨씬 더 달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경우엔 너무 생존에 힘을 쏟게 된다.
생명의 궁극적 목적이 생존 외에 더 중요한 게 뭘까 싶긴 하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된 상태라면, 굳이 사서 고생하지 말고
생존에너지에 투입될 에너지를 정신적 에너지에 모두 다 투입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겠나
졸리다. 허튼 것에 주의를 뺏기지 말아야 한다.
아마 내가 너무 산만해서 주의를 빼앗길만한 것들을 제거할 수밖에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