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게 화가 된다.
어린 시절 감정적 공감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있는듯 없는듯
나의 감정이나, 나의 상황이나 아픔은
부모님께는 짐덩어리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어느 시절부터는 공부를 잘해서 1등을 해도 그건 그냥 당연한 거였다.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칭찬 받을 일도, 동생 둘을 키우는 그들에게 관심 받을 일도 아니었다.
공부를 왜 하지 않냐고? 공부를 왜 해야하느냐고 묻는 내게는 그런 반항심도 있었다.
어차피 나는 관심 밖의 존재이다. 성적이 떨어진다고 걱정하실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옛날 사람들에게 첫째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한다.
재산의 일부로써 돈을 벌어오는 역할을 하면 되는 존재
K-장녀라는 건 그렇게 대체로 첫째라는 이유로 부여받은 책임감과 동생들에 대한 부양,
효도와 부모의 재정적 도움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소'나 '돼지'와 다를게 없다.
노력하거나, 무언가를 잘하거나, 돈을 가져다 주어야
겨우 관심을 가져주고, 얼굴을 봐주는 그런 존재
적어도 우리 엄마에겐 그랬던 것 같다.
엄마도 본인이 어린 시절 그런 존재로 키워졌으니까.
그러니까, 윤회의 대물림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고, 취급당한 대로 그 자식에게 똑같이 하게 된다.
'부모자격시험'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게 생긴다면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이 원하는 일개미 생산이 줄어들게 자명하기에
필요성을 알면서도 누구도 시행하지 못하는 것 뿐
최근 반려견을 입양하는데에 있어
그런 비슷한 시험과 자격 체크 항목들이 생겼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인간이란 자유의지가 있으니 그렇게 자랐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윤회를 끊어내면 된다.
2021년도였던가.
20살때부터 알아오던 지인이 있었다.
나는 종종 즉흥적인 면면이 있었다.
그 지인은 나의 그런 면에 관해 적나라하게 나의 탓을 하면서 '너로 인해 우리 사이가 어려워지는거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했던 작은 선물과 편지가 그렇게 버려졌다.
어린 시절 엄마도 그렇게 행동했다.
나의 작은 선물이나 나의 마음들은 하잖고, 별게 아닌거였다.
그런 내가 자존감을 끌어 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나.
부모로부터 잔인하게 거절당한 마음과 존재는 쉽게 끌어올려지지 않는다.
동생이 이사를 가니 꽃게탕을 끓여준다고 했다.
난 어린 시절부터 그 꽃게를 발라먹어야하는 번거로움에 국물만 조금 먹다 말곤 했던 음식이다.
일정을 보고 토요일에 먹는게 좋겠다고 했다.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갑자기 꽃게탕을 먹자고 했다.
아, 그때 그 지인이 그래서 화가 났구나.
갑작스럽게 끼어든 인터럽트가 심히 불쾌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상황에는 안중에도 없이 나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채 끓여진 꽃게탕을
이번만 참으면 된다 하며 겨우 겨우 같이 먹고, 공부를 하려는데
그냥 이 모든게 너무 싫어졌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동도, 표정도 짓지않고
쉬고 싶다.
이런 일에 괴로워하는 내 자신을 또다시 미워해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