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작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상암동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집을 매일 오가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타인, 특히나 나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지난 여름, 프로젝트 파견을 나간 을지로에서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번듯하게 차려입은 금융권 직장인들부터
조금만 걸어나가면 청계천 토박이 주민분들,
담배를 물고 있는 아저씨부터 탑골공원과 그 일대를 서성이는 어르신들
과연 누가 저런걸 살까 싶은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바닥에 깔아두고 팔던 아저씨, 아주머니
경찰과 실랑이를 부리시던 주정뱅이 할아버지
장기를 두시는 어르신들과
아픈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었던 희끗한 머리카락 만큼 기운 없이 늘어진 얼굴들
아주머니가 되면 저런 화려하고 커다랗고 찬란한 색상의 옷들이 좋아지는 걸까
어딘가 하나씩 고장난 몸을, 어딘가 지독하게 고독한 냄새를 풍기며
세월에 깔리고, 뭉개져 찌그러져버린 얼굴들
나는 두려웠고, 경이로웠다.
인간이란 살아있기에 살게 되는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리워
아픈 몸을 끌고, 외로운 몸뚱이를 겨우겨우 걸어나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몇 천원을 꺼내
비린내가 진동하는 국밥길에서 국밥 한 사발 사먹고,
그래도 아직 여기는 변하지 않았다고, 여기만은 남아있다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까
내가 제일 무서운건
그런 고독과 늙음보다.
내가 정말 사람답게 늙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나는 그게 무섭다.
나는 어떻게 늙어있을까.
그게 늘 두렵다.
내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때,
내 곁에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고독하지 않게, 너무 외롭지 않게
그리하여 지금처럼 죽음을 그리워하기보다는
하루라도 더 미세먼지 가득해도 좋으니
내 폐로 공기를 마시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워도 좋으니 내 다리로 한 발자국이라도 걷고
어느 계절에 핀 꽃 한송이에 지금처럼 감동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그렇게 붙어있는 목숨줄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