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게 싫었는데.
엄마는 어린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왜냐하면' 이라고 꼭 부연 설명을 해주셨다.
어느 정도 머리가 커서 사춘기가 되었을때,
가고 싶었던 공업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온갖 반항심이 가득 찼있던 그때는
엄마가 '왜냐하면'이라고 조곤조곤 붙이는 설명이 너무도 싫었다.
어쩌면 그냥 무슨 말이든 듣기 싫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엄마는 그렇게 내가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부터
모든걸 설명해주셨다.
안 되는 건 왜 안 되는지, 해줄 수 없는 건 왜 해줄 수 없는지
부모된 마음으로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여 네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해줄 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아스파라거스를 드세요.'라고 하면 먹지 않는다.
하지만 '소듐을 많이 섭취하셨을 경우, 이걸 배출하기 위해 칼륨이 필요한데 그 칼륨을 순수하게 다량 섭취할 수 있는게 아스파라거스예요.'라고 다시 상세히 설명해주시면 그때부터 먹는다.
반스 운동화도 마찬가지였다.
'반스 운동화가 좋아요.' 했을 땐 안 사다가 '반스 운동화가 접지력이 좋아서 레그프레스를 할 때 밀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하실 수 있어요.'라고 하시니까 그날로 바로 반스 운동화를 샀다.
이 세상에 모든게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이 가능한게 아닌데,
설명가능한 AI를 원하는 것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불안하기 때문일까
단순하게 그냥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자라진 걸지도 모른다.
무조건 하라면 해. 라는 폭력은 그렇게 많이 당해보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는 납득이 될때까지 저항했던 것 같다.
단순해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