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상처받았었으니까
종종 말을 예쁘게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말이 예쁘다기보다는 상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인데.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말재주가 늘은 건지
어린 시절에도 그랬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존중이라는 단어가 없는 세상에서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가난한 집안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농담은 늘 그런 식이라서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섬세하고 여린 아이의 무의식에 쐐기를 박는다.
발달심리학을 조금 공부한 결과,
자신의 자식이 저렇게 된 건 전적으로 부모의 양육태도에 달려있었다.
자식이 속을 썩인다는 건, 본인 얼굴에 침 뱉기다.
어쨌든, 엄마는 어린 시절 나에게 '애가 왜 그렇게 쌀쌀맞니'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뿌린 대로 거둔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정상적일 때는 엄마도 그렇게 쌀쌀 맞진 않으셨던것 같다.
말습관은 가까운 사람을 닮는다.
말 예쁘게 할 수 있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나서,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른들과 멀어진 다음이었다.
사람들을 납득시키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보드랍게 그들을 감싸 안아 야한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이다.
강성인 사람들을 대할 때만 그렇게 에너지를 들였다.
원래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고,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그냥 모두에게 그러는 편이 나의 마음에 좋다는 걸 알았다.
모진 말을 하면 몸이 아팠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그랬다.
"그렇게 무슨 말만 하면 상처받으면, 무슨 말을 하겠니?"
아니, 그러니까 상처받지 않게 예쁘게 말해야지요.
소중하다면
상대방이 귀하고,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존재라는 걸 안다면,
그리하여 그 사람이 귀하듯 나 역시 귀하고, 소중한 단 하나의 존재라는 걸 안다면,
그를 향상 진심 어린 예쁜 마음을, 아름다운 마음을
그저 몇 마디 말로 표현하려면 예뻐질 수밖에 없는 게 말이라고 생각한다.
말에 의해서 상처를 많이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를 받는 이유는 그 말에 담긴 찌르는 듯한 아픔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나와 같이 여기는 사람은 그 아픔을 오롯이 다 받게 마련이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다정해서이고
그만큼 상대방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상처받아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은
괜한 말에 상처받을까
노심초사하며 한마디 한마디 귀하게 꺼낼 수밖에 없게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