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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441 거울이 없는 세상

내가 없는 세상

by Noname

온전히 혼자 있으면 자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거울이 없는 세상에 살게 되면 나의 외면은 더더욱 스스로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거울이 없는 세상에서 살던 동물들이 종종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건 그저 그때뿐이다.


다시, 거울이 없는 세상, 내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면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거울이 없는 세상은 무인도 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일반적인 사람인 이상,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울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양육자라는 거울에 비추어 형성된 인격과 행동방식

친구, 직장동료, 하다못해 길을 가다 스쳐 지나간 어떤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나의 거울이 되어,

나 자신을 비춘다.


하물며 그런 존재가 나와 가장 밀접하게 붙어있고, 가장 밀접한 마음의 거리를 갖는다면


나처럼 불완전한 존재는 그런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을 밀어내는데 급급해지게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워서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애증에 가깝게 시기한다.


거울이 없는 세계

가장 가까이 있는 거울들을 치워버리고


차라리 고독 속에 들겠다며,

나는 다시 홀로 침전한다.


그리하여 나만이 존재하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온 가득 나만을 느끼다가 때때로 외로워하다가


문득 마주한 진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흠칫 놀라고는

후다다닥 다시 이불속에 기어들어가

나를 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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