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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an 04. 2024

마흔-339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나는 왜 사랑하면 불안해질까?"

언젠가 나는 회피형 인간일지 모른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연애를 하려고 보니 불안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쩌면 나는 불안회피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은 참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기에 더더욱 나의 불완전한 부분들만 눈에 띄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안정형 애착관계를 갖고 있으나, 다만

하루 네번의 생존신고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 외에 관계에서 그렇게까지 불안형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회피형도 아니고 

제법 건강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내 스스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이상한 낌새를 잘 알아차린다는건데, 

하는 일도 리스크관리가 중요한 일들을 해 온 만큼 

사실에 기반하여 예민하게 단서를 잘 찾아내는 편이다. 


코난 도일이 울고 가겠네... 


한편으로는 내가 사랑을 받아온 방식으로 내게 사랑을 줄 사람은 

이제 더이상 없는게 현실인걸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나르시스트들에게 전 직장에서부터 너무 많이 엮여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내가 내 안의 나르시스트를 인정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충분히 그런 면모가 있음을 시인해왔지만, 

그보다 더 극악무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직장 상사며 여러 사람들을 겪다보니 

귀신같이 그런 사람을 잘 걸러내는 능력이 생겼다. 


이렇게 사람보는 눈이 생기는건가. 

그러고보면 대학생 시절에는 정말 끔찍하게 조종당했는데, 


나르시스트들을 공감을 잘하고, 예민하며, 자아성잘을 잘하는

그러니까 상대방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고, 공감하며 심지어 죄책감도 잘 느끼고, 알아서 잘 맞춰주고, 뭔가가 잘못되면 본인 탓부터하는 나같은 인간을 참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니, 요며칠 스스로 '나는 역시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건가.'하는 자기 의심을 하던 차에 정신을 차렸다. 


그럴리가 없지. 

그건, 내 어린 시절, 당연히 자기 자신이 전부인 줄 알았던 유년기의 나에게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을 닮았다. 


엄마는 내가 질투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지금 내 나이에 고등학교 3학년 딸이 있는거잖아. 

끔찍하네. 


내 자신도 바로세우지 못한 나이에 애가 애를 키우다니.


하여튼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이를 낳는게 맞는거 같긴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엄마의 세대는, 대단한 편이다. 


핵가족화가 되기 전 시대에는 대가족들이 아이를 공동부양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니 알아서 크고, 착하게 잘 자랐지. 


내가 크던 시골만 해도, 

상아엄마 어디 갔다고 하면 동네 할머니분들께서 챙겨주시고, 

동네 언니가 같이 놀아주고, 

옆집 큰아버지며 10분 거리 친척집이며 


여하튼, 말이 샜는데 

나르시스트가 자라나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런 성향이 될만한 양육환경이 아니었으니.


하고싶은 말은 그렇게까지 비정상적인 애착관계가 형성되려면 

적어도 엄마가 낙태를 시도하거나 아이를 경멸하거나('캐빈에 대하여'를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거다.) 

유전적 결함이 아니라면 어렵다는 말이다. 

가정환경이 정말 극에 치달았거나. 


비율적으로 그렇지 않을까. 

여튼 연애를 글로 배우는 중이다.

뭐든 배워야 실전에서 지혜가 나오는 법.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난하고 평범한 내 삶에 감사해야겠다.


적어도 나는 나의 결함과 결핍을 인정하고, 개선이라도 하려고 노력이라는 걸 하긴 하니까. 


내가 극악의 나르시스트라고 해도, 내일은 조금은 덜한 나르시스트가 되려고 노력하는 나르시스트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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