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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an 26. 2024

마흔-317 나의 졸렬함

분리 

나는 그게 일시적인 해리 증상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한번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발인을 하던 날이었다. 

외할머니의 시신이 실린 차는 외할머니 댁 근처를 들려 장례식장으로 가게 되어있었다. 


버스가 멈춰서, 할머니 댁 앞에 내린 나는 


털썩 주저앉아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하더니 집에 오니까 좋으유'하고 목놓아 울었다. 


그런데 그 순간 

울고 있는 나의 뇌 꼭대기에서 나를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분명 나는 목놓아 울고 있는데, 내면에서 '너는 정말 슬픈거니? 연극하는거 아니야?' 하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사실은 그 이전 중환자실에서도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시다가 내 목소리를 들으시곤 

죽음의 마지막 숨을 내쉬시는 그 순간, 


나는 또 그 소리를 들었다. 


'해방감'

외할머니는 갑자기 폐암4기 판정을 받으셨다. 

다들 병간호가 여의치 않아 평일 퇴근 후와 주말에 가서 병간호를 했다. 

그 기간은 한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 작가님의 '변신'에 나오는 그르누이의 가족들의 새출발에 전율이 흘렀다. 


나에게만 존재하는 줄로 알았던 몰인간성, 이기심, 졸렬함 

그토록 나를 아끼고 기도해주신 외할머니의 죽음에서 내가 느꼈던 카타르시스 


그건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질 때도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한다. 


해방감. 

그토록 사랑을 갈구해놓고는 양껏 채워진 사랑에 배가 불러 젓병을 집어 던진다. 


언젠가는 새해 결심으로 '좋은 사람, 싫은 사람 없이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바로 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외면하고 싶어 위선을 자처했다.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졸렬하고, 비열해도 어쩔 수 없이 영락없는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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