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뭔가 이상했다.
마음을 다 해서 좋아했는데, 마음을 다 해서 좋아해서 돌아오는 건 상처였다.
도움이 필요해서 손을 뻗었을 때, 돌아오는 건 냉정한 비난이었다.
아무리 해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지금도 엄마에 대한 마음은 오르락 내리락 한다.
마음을 다잡고, 엄마도 어렸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이해해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아가 다 큰 성인인 나를 잠식하는 일은 빈번히 발생한다.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상처 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아예 사랑했다가, 지레 짐작하고, 포기하곤 했다.
그 비합리적 신념이 비합리적이라는 걸 알기에, 아무리 의식적으로 용기를 내도,
나의 무의식에서 정립된 알고리즘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다.
성인이 되어서도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하는데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밝고 명랑하며, 씩씩하다.
누구나 우울한 날이 있지.
안정적인 가정에서 안정적인 지원과 안정적인 애정을 받고 자라온 사람들
자연스럽게 가정을 이룬다는 걸, 물론 그들만의 어려움과 그들만의 고민이 있을 지라도
타인에게 기대고, 도움을 받고, 함께 살아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나는 지극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부족하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예민한게 늘 문제였다.
조 디스펜자의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에는 과학적으로 측정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뇌 파동이 상세히 설명 되어 있다.
그 진폭을 줄이는 일이, 내 인생의 최대 과제라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점차적으로 안정되던 나의 감정선은
이제야 겨우 일반적인 수준에 왔다.
마음에 병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다.
사람들은 타인의 어둠을 거부한다.
당연하다. 이미 그들에게도 어둠이 있고, 그 어둠을 거울 보듯 보며 불편함을 느끼기엔
세상엔 재밌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그래서 그 어움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늘 없이,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프랑스 영화 중, 자신의 애인을 뺏기고, 망연자실해 하던 여자가
꿈을 꾸면서 자신과 전애인과 전애인의 애인 사이의 관계가
전생에 자신에 의하여 망가졌었다는 것을 알고, 모든 걸 업보로 받아들이고
그때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스토리가 있다.
어딘가에 납득할만한 이유, 그것이 비록 확인불가한 어떤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그저 내 탓이오 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 소설 '섬' 한 대목이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 우리는 짐작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나의 어둠은 어느 정도 사람들의 어둠을 흡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나의 어둠을 드러낼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개개인이 가진 그 어둠
거기에서 깊은 고독과 사유가 발생한다.
그래도 심해에서 해수면으로 많이 올라와있다.
잘하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나만은 알고 있으니까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이건 순전히 나의 불안정과 불완전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