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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Feb 23. 2024

마흔-290 익숙해질 필요

그럴 필요가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불혹이라고 한 데에는 조상님들의 깊은 지혜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친구들을 만나서 종종하는 이야기가 마흔에도 순수하다는 건 욕일 수도 있어. 

마흔 가까이에도 순수하고 해맑은 분들은 대체로 얼굴에 주름이 거의 없고 동안이다. 


그만큼 세상 때에 찌들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욕일 수도 있어."를 뒷받침하는 가설은 아래와 같다. 

"그의 천성이 남의 눈치를 살피지않고, 제멋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다."


일을 못해도 해맑고, 누가 뭐라해도 해맑고, 그저 천진난만하게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다는 이야기. 

타인의 삶을 그렇게 재단하기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어야하지만, 대체로 사회생활에서 겪는 뇌가 올곳아 보이는 분들의 민폐란 이만 저만이 아니니 '대체로' 피해를 본 입장에서 나온 말일테다. 



어쨌거나 그렇게 반사광처럼 타인과의 부딪힘을 쳐내버리든지 

아니면 그 부딪힘을 다 맞든지. 


언젠가 TED강연인가에서 100번을 거절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일부러 "거절 당하는 연습"을 한 것이다. 



거절이란 얼마나 두려운가. 

유아기에 생성된 거절에 대한 클루지는 그게 마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라도 한 것 마냥 

청천벽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또한 주양육자의 양육태도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현명하게 양육된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마흔 쯤되면 

우리가 느끼는 온갖 감정과 온갖 풍파가 '익숙해지는' 시기이다. 

그러니 불혹이라고 한다. 


잔잔하게 사기도 좀 당해보고,

배신도 좀 당해보고, 

믿었던 애인한테 버림도 받아보고, 

속아도 보고, 


행복해도 보고, 

기뻐도 해보고, 

성취도 해보고, 


이것저것 켜켜이 감정의 기억들이 쌓이면 어느 것에도 "혹"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불혹이지. 


不惑

그런데도 흔들리고, 휘청인다고?

아직도 속고 있고, 아직도 기쁜일에 크게 기뻐한다고?


괜찮을거 같다. 

나도 그러니까. 


오히려 더 소소한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되고, 큰 일에 침착해지기도 하는 법이다. 


결국은 이렇든 저렇든 

삶에 제 각각의 방법과 방식으로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법이겠지.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어지는 일이 덜하도록 

담대해질 필요는 있겠다. 


그러나 일희일비하는 것도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이제는 참 귀엽더라. 


그깟 나이 저 별들에 비하면 세포 수준에 불과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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