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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Apr 01. 2024

마흔-252 9부 능선에서 포기

다 된 밥에 재뿌리기

"언니는 꼭 그렇게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포기하더라?"


며칠전 만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와 같이 준비하던 시험을 전날에 GG를 치고 가지 않았던 적이 있다.

코시국 당시 우리는 카카오 영상통화로 평일에 매일 4시간이 넘도록, 주말에는 8시간 가량을 같이 공부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험 전날에 GG를 치고, 시험장에 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시험 때, 가볍게 합격을 했다.

그 당시 친구는 '이상아 기만설'이라며 일부러 한 회차를 더 돌아간다고 놀렸다.


사실 기술사 시험을 볼때도,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서 한 회차를 더 공부하기도 했다.


산을 오를 때도, 뭔가 이 산을 내 마음에 찰 만큼 느끼지 못했다 싶으면 9부 능선에서 내려온다.

그래야 다음에 또 가니까.


단숨에 합격하는 것보다, 단숨에 올라버리는 것보다

한번쯤 돌아가는게 내게 더 유익하고, "재대로"했다는 느낌을 준다.


하여튼 이상한 성격이다.

그게 아마 기술사 공부할때 더 강화가 됐을 법도 하다.

필기를 한텀 더 공부하면서 지식이 더 깊어지고, 뭔가 제대로 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러고보면 아주 어렸을 때도, 이런 성향이었다.

뭔가 제대로 해야만 하는 스타일, 바닥부터 올라가야하는 스타일

그래서 대학생 때도, 누군가 좋은 회사를 소개해준다고 해도, 기어코 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늘 입으로는 "날로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지 못하는 성향이라 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 친구들과 지난 주말에 송리단 길에 가서 이리저리 산책을 하다가 사주를 봤다.

40이후로 잘 풀린다고.


늘 "앞으로 더 좋아질 일이 뭐가 있겠어."라고 말하던 나에게

40 이후에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일들이 생길 거라고 했다.


친구는 또 말했다.


"거봐, 언니. 또 다 됐는데 포기할 뻔 했잖아."


40 이상의 인생을 떠올려 본 적이 거의 없다보니, 나는 죽어가는 중이었다.

어디서 희망을 얻겠나. 어디서 기쁨을 얻겠나.


홀로 살아가야하는 40살이 임박한 예쁘지도 않은, 기가 쎈 노처녀란

한국에서 뭘 더 바랄 수 있는게 없다.


그래봤자 독하다 소리나 듣겠지. 비관적이다.

대체로 그래왔으니까.


대학원을 가고자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숙원처럼 생각했는데,

막상 원서를 쓰려니 꺼려진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만 나이로 40살이 될거라

이민을 위해 필요한 점수를 충족 시키기가 더 어려워진다.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한다.

진심으로 대학원에 가고 싶은건지(가고 싶다고 100%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니면 진짜 진심으로 이민을 가서 청소부가 되고 싶은 건지.


좋아보이는 것을 좇는 건지.

내가 좋은 것을 좇으려는 건지.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모든게 헷갈리게 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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