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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Mar 31. 2024

마흔-253 구운몽(feat.드라마)

너무나 외로워서 TV를 켰어.

드디어 사람들이 TV를 켜두거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도 요즘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뭔가 외롭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그런 연유로 누군가가 재미있다고해도 5명 이상이 아니고서야 

여간해서는 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시작했다. 


혼자있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드라마에 몰입하다보니 내가 사라지고, 나는 그 환상의 세계에 사는 주인공이 되었다. 


좀처럼 느껴지지 않던 감정들이 등장인물들의 눈빛과 대사에 따라 꿈틀거렸다. 


그덕에 요즘 꿈이 매우 달콤하다.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몇년전에 사뒀던 뉴스를 활용한 학습지를 이제야 같이 보기 시작했다. 

스피킹 연습 교재의 내용이 팬데믹 상황에서 TV를 자주 보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소통의 욕구를 해갈 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마련인데, 

그게 팬데믹 상황에서는 TV를 통해 채워질 수 있다는 것다. 


그게 오히려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으니 우선은 그렇게 하고, 상황이 나아지면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하라고 권고했다. 



외로운 사람들은 TV나 라디오가 필요하다. 

내가 소통하기 위해 책을 읽듯이 그들도 그들의 방법이 TV나 라디오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역시 늘 티비를 켜두셨다. 

"할머니 이거 보고 있어? 안 보면 끈다?"


하면 할머니는 내비두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그 당시 정규방송이 다 끝나고, 화면조정화면도 끝나버리고, 

덩그러니 회백색의 화면에서 신호를 잡지 못해 치직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자다가 일어나서 TV를 꺼야했다. 


워낙 예민한 탓에 나는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는 편이다보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지만, 

우리 외할머니는, 그래야만 했다. 


외향형의 친구가 말해줬다. 자신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편안함을 느낀다고.

저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불편함을 느끼는데(누가 위협하지 않아도).

그래서 이 좋은 날 밖에도 나가지 않고, 차라리 방 안에 누워 하늘을 보는 편이 편한건데. 


뇌 신경가소성을 위해서라도 나가야하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 약속이 있어 테헤란로 쪽으로 나갔다가 분위기 좋은 테라로사에서 공부도 하고, 책도 보면 좋겠다 생각하고는 역시나 가지 않았다. 


그런 나조차도 사무실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사람이 부러운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럴 수 밖에 없겠다. 



두번째는 지루한 삶의 다채로운 경험을 대신 하는 거다. 

책을 읽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가 고르는 책은 그 사람의 성향을 닮아 있어, 결국 자신만의 세계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확증편향이라고 하지. 


그러나 OTT나 TV에서 방영되는 콘텐츠들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하고 시야를 넓혀줄 수도 있겠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동경하는 것들을 대리만족하고, 


끝내는 다시 돌아온 현실에 입맛을 다실 지라도. 


삶도 구운몽,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고 구운몽, 

결국 매일 꾸는 꿈도 구운몽. 



뭔가 아는 것처럼 일기를 써오고 있지만 

사실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힌 유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 세상에 갇혀있다. 무간지옥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 여주인공은 9살때 오빠를 잃었다. 


아동기와 유아기는 확실히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긴 하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대사 하나하나가 와서 박히는 것들이 있다. 


나도 가진게 많았다면 저런 상황에서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지금 상황에서도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은데, 어차피 모든건 반복될 뿐인데. 


어쨌거나, 드라마에 영어자막을 켜두고 영어공부를 하는 중이라며 재밌게 보고 있다. 


얼마전만 해도 대중매체에 신랄한 비판을 해대더니 

참 나란 인간 줏대가 없다.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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