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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Apr 10. 2024

마흔-243 저 요즘 욕해요

진짜로 욕해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고상해지고, 점잖게 행동해야한다고 배웠다. 

유투브에는 '고급진 여자로 보이는 법'따위의 영상이 뜬다. 


멋모르던 중학생 시절 처음 욕을 배우고, 

남녀공학에 다니다 보니 난 꽤나 욕에 살기를 섞어 하는 아주 허세 가득한 중학생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도 커트머리 시절 남학생들과 어울리다보니 또 욕을 찰지게 잘했다. 


고등학생 시절엔 여고를 나와서 뭐 여학생들끼리 그렇게 욕할 일이 뭐가 있었겠나. 


그냥 욕은 허세의 산물이다. 

그 허세는 두려움과 약함을 가리기 위함이고. 반항의 상징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나쁜 짓을 하거나 하지 말라는 걸 한 적은 없으니 

작고 귀여운 사춘기 소녀의 처절한 반항이지. 


귀엽다 귀여워


그러니 더더욱 성인이 되면서 굳이 타인을 언짢게 만드는 험상스러운 말로 내 입과 내 자신을 우습게 만들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욕은 35세 경, 명상센터에 있는 스트레스방 같은 곳에서 일부러 끌어 올려 쏟아붓긴 했다. 


그러니까 굳이 

욕으로 타인을 위협할 수도 없으며 

그럴 만한 일도 없는 평범한 삶에서 


왜 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냐면, 

화는 그때그때 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아니, 화를 내지 않는다기 보다는 논리와 냉정함으로 무장을 하면 

대체로 비합리적인 상황들이 해결이 되기 때문에 

굳이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러나, 내 자신이 비합리적일 때는 달라진다. 

가령 어제는 경기도 버스를 두번이나 보내고도 새채기를 또 두번이나 당해 약이 올랐다. 

난 당했다. 졌다. "빌어먹을!"하고 입밖으로 내뱉었다. 후련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아무렴 어때. 


화는 쌓아두변 '홧병'이 된다. 홧병을 막기 위해선 그때그때 풀어야한다. 


지나치게 '점잖아야한다.'는 말을 의식하고,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은연 중에 스스로를 억압했다. 


거기서 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억압하는 데에서부터 
병이 시작된다.



그거 진짜 생각보다 심각한데, 우리 몸의 장기는 감정선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어떤 병을 얻었다 하면 무엇 때문인지 지레짐작한 후, 인터뷰를 하면 대체로 맞는다. 


그러니까 참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오래 많이 참으면 스노우볼이펙트가 일어나니까


이렇게 잘게 잘게, 그때 그때 소소하게 욕하고 털어버리는거다. 


그래서 얼마전에 사무실에서도 한건 했다. 

사람들은 또라이를 피한다. 그 편이 살기에 편한 것 같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다 떠안지 않겠다는 말이다. 


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기로 했다. 


그러니 사람은 화가 날 수 있도 있는 것이니 화가 나면 욕이라도 하라고. 


그거 말고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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