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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Apr 14. 2024

마흔-239 주변음 수용 모드

이게다 신경가소성을 위해서야.

얼마전 '지옥을 창조하셨습니다.'라는 일기를 쓰고 난 후,

인식체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골 초등학교를 떠나 '면'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부쩍 마주하는 사람들, 자동차들 온갖 소리들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커널형이어폰을 사용해왔다.


용돈을 모아 그당시 나에겐 거금이었던 소니 이어폰을 쓰기 시작한 나는 중저음도 좋았지만 주변음을 듣고 싶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도 끝내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못했다.


세상은, 세상의 소리는 나에게 너무나도 벅찬 무엇이었다.


처음에는 중저음에 대한 집착이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 소리는 엄마의 심장소리와 같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괜찮아졌다.

중저음 소리보다는 그저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사람의 소리가, 싫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훅 느껴지는 그 소리를 통해 느껴지는 에너지가 싫었다.


그러나 알게되었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외부는 나의 내부에 그저 커다란 장애물이 될 뿐임을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를 읽고, 더더욱 실감했다.



공간을 여행하고, 사건들을 경험함을 통해 신경가소성이 활성화된다는 건 익히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청각을 통해서도 가능한게 아닐까?


호주 갔을 때, 산새 소리가 아이들의 삑삑이 신발 소리같아서 하루 이틀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삼일 차엔 내가 알던 삑삑이 신발 소리가 아닌 그저 호주라는 곳에 사는 새들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인식이 되었다.


낯섦에 대한 적응,


요즘 들어 주말 중 한번은 카페에 나와서 작업을 한다.


서향이라 오후 2-5시 사이면 너무 덥기도 하고, 직사광선이 신경쓰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내가 외롭다는 사실, 고독하다는 사실


사람의 온기가 있는 어떤 곳이 그립다는 사실


내가 쓸데없게 여기는 모든 하찮은 생각들이

사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고,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는 일상일 뿐이라는 사실


위로 받고, 수용하고,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로써 내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일


어쨌거나 뇌가 필요할 때, 팽팽 신나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주변음 수용 모드는 타인 수용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만 귀를 틀어막고, 세상을 봐야지.


에반게리온 TV 판 다시 보고 싶어지는 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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