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디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고 소식을 받았다.
두번째 직장에서 친하게 잘 지내며 '언님'이라고 부르는 분의 아버지께서 소천하신 것이다.
친한 누군가의 직계가족의 부고는 손가락에 꼽는다.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언님과 그당시 함께 어울리던 동료분들께서 시골까지 와주셨다.
못오신 분들도 부의를 해주셨다.
그 직장을 떠난지 8년이나 되었었음에도
부고 소식을 접하고도 차분하게 일기를 쓸 수 있는건
언님에게는 그녀를 지탱해줄 가족이 있기에 '내가' 뭐랄까 이걸 마음이 놓인다고 말해야 맞는걸까
그 시절 그 직장에 다닐때 친하게 지내던 디자이너분의 아버지께서 소천하셨을때,
부고 소식을 접하고도 야근으로 인해 찾아가질 못했다. 익일에 다같이 다녀왔는데, 그때는 그게 굉장히 비인간적이라고 느낀 것 같다. 당시 그 디자이너분은 20대였고, 그런 일을 처음 접한 나는 당장이라도 뭘 해줘야할 것같은 조급함과 상실감을 느꼈다.
어리숙하게도 나는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분리할 줄 몰랐다.
아빠의 장례식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많은 분들이 지방의 시골마을까지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들 와주셨다.
어쩌면 기댈 곳이 없어보이는 누군가의 등짝은 그런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걸까
고마운 마음들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제 짝을 만나 서로가 의지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