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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un 02. 2024

마흔-190 익숙해져야

마음 놓고 

운동모임에 다녀왔다. 작년 9월에 가입하고 다섯번째 출석


오전에 만나 운동하고 해산하는 매우 건전한 모임이다.

다른 모임에 가면 또 나만 빼고 연애하느라 바쁠테니, 늘 이런 건전한 곳만 찾아 정착한다. 


한달 여간 지켜보는 편인데, 술모임이 잦다거나 오고가는 대화가 어떤지를 본다. 


어쩌다보니 모임의 모임장님은 첫 모임에서 보고, 오늘 두번째로 봤는데 

첫 모임때와 다른 나의 온도에 흡족해하셨다. 


92년 생이신데, 스트레칭 존에서 전에 파트너운동을 했던 분 외 몇분과 이야기를 나누는걸 보고 경로당이라고 놀리셨다. 

처음엔 말도 잘 안하고, 서먹하게 있었는데 이제는 내집마냥 있었다며 말이다. 



한참이 걸린다. 

마음이 워낙 여려서 쉽게 마음을 주기가 어려워서인 것 같다. 


그만큼 타인에게서 마음을 빼내기도 어려운 편이다. 



충분히 세시간을 운동하고 나니 하루가 나른하고, 잡생각이 그다지 끼어들 틈이 없다. 

공부를 좀 하면 좋으련만 마냥 쉬었다. 


물론 영어공부는 했지만, 어영부영했다. 


인생의 태평성대다. 

이런 삶을 쭉 유지하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하루5분일기'에는 주간 목표로 지루한 삶에 자극이 될만한 뭔가를 찾아보라는 의도의 말이 적혀있었다. 


다들 삶이 지루할 수 있다. 

그런데 나같이 불안도가 높은 사람은 북한에서 보낸 오물풍선에 기생수라도 들어있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아주 잠깐 상상의 나래 속에서 공포에 빠졌다가 이내, 

오늘의 평화에 감사하게 된다. 


충분히 마음껏 걱정없이 운동하며 실컫 놀고, 

지하철 역사 내 빵집에서 나는 빵냄새를 이겨내지 못하고, 빵을 사들고 와선 

끊었던 우유 생각이 나서 후다닥 우유를 사들고 와서 빵과 같이 먹으며 


사람들이 술을 끊기 어려운건 이런건가 

이해도 해보고, 

15시쯤이면 너무 강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피해 차가운 방바닥에 숨어서 책도 보고 


그냥, 이게 얼마나 달콤한 삶인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냥, 이대로만 계속 살 수 있다면 

때때로 이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지더라도, 

이내 또 감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하루에 또 감사를 한다. 


삶이 이제야 좀 익숙해지나보다. 

늘 노심초사 죽음과 온갖 변수들에 지레 겁을 먹고, 

차라리 끝이나길 기다리며 벌벌 떨던 어린아이가 

이 세상이, 온갖 죽어간 것들과 함께 살아온 것들과 함께 살아갈 것들에 감사하며 


얼마전 읽은 책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한게 만든다.'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별일 아니네."
"나는 지금 이 순간 행하는 일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삶은 나를 아프게 했고, 삶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사실 나를 아프게 한 건 나였고, 나를 강하게 만든 것 역시 나였다. 

갑자기 너무 뭉클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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