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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un 07. 2024

마흔-185 나에 대한 오해

자기객관화

나는 나를 지독히도 오해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시각은 주관적이다.

해석이 들어간다.


형상을 그대로 비추지 못한다.


또한 그 해석이란 시대적, 문화적, 나의 주변 몇몇의 영향을 받는 절대적이지 못한 잣대가 적용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인간의 판단력은 자로 잰듯 정확할 수 없다.


편협함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오해의 프레임은 아주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을 수 있지만, 성인이 깨지 못할 틀이 아님에도 그저 그렇게 해왔고, 편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오해를 일 삼는다.


타인의 시각 역시 나와 같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살아간다.


자기객관화의 척도라는 것들,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면 그런겁니다.'라는 말들도 있다.



그런 모든 척도와 기준은 세대를 아우르기도 하지만 세대를 건너 뛰기도 한다.


그러니 절대적인 것이란 있을 수가 없다.

나의 내면에서 나에 대한 오해를 어느 방향으로 할지만 정하면 된다.


외부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내부, 나의 내면은 타협이 가능한 어떤 것이다.


어차피 절대적인 가치가 없다면

스스로에게 유리하고 합리적인 가치를 차용할 필요가 있다.


자기객관화가 되지 않은 사람을 판단하는 그 타인이

가장 자기 객관화가 되어있지 않을 수 있다.

지나치게 타인에게 휘둘리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대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단지 목소리를 내는 몇몇에게 선동된 것들일 뿐이고

도무지가 잔잔하게 행복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란

그렇듯 제야의 고수처럼 어디선가 조용히 삶을 향유하고 있을 뿐인거지.


그는 그 자신이 무엇이든, 그 자신이 뭐라 불리우든 그저 그 자신으로 존재할테다.


길가에 핀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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