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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un 06. 2024

마흔-186 떠나지 않는 이유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꽤나 떨어진 대로변에 사셨다. 

뒤로는 기찻길이 지나갔고, 앞으로는 다른 동네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세상이 변하면서 내가 고등학생 무렵, 그 길은 4차선 도로가 되었다. 


그렇게 외따로이 사시다보니 도둑도 간간히 들었고, 여자 혼자 살기엔 뭔가 험해보였다. 

하지만 키가 크고, 기개도 좋으셨던 할머니는 꿋꿋하게 혼자 사시다가 폐암으로 가실 때까지

집을 떠나오시면 늘 "집에 가야여." 하시며 본인 집을 그리셨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안 쓰러워 나는 영구차를 타고 외할머니 집에 당도해

"집에 오니 좋으유"하면서 울었더랬다. 



시골에 있는 우리집은 예전에 AB간척사업을 하기 전 창고로 쓰이던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집도 창고처럼 생겼다. 


옛날부터 친할아버지는 돈이 많으셨으나 그걸 늘 사람들과 버는 만큼 똑같이 나누는 편이셨다고 했다. 마음이 한없이 좋으셨던 할아버지는 땅도 그렇게 나눠주시고, 번 돈도 인부들과 똑같이 나눠주시고, 본인 형제분들 자제들까지 다 교육시켜주시고, 


우리 아빠에게는 남은게 없어 그 창고를 주셨다. 

아빠는 손재주가 워낙 좋으셨고, 못하는게 없으셨기에 그 창고를 아빠 친구들을 모아 집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방 두칸, 나중에는 뒤쪽으로 확장해서 주방도 만드셨다. 그러나 하나 빼먹은건 화장실이었다. 

다 성장하고서도 구식 화장실을 쓰다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는 욕실로만 쓰이던 곳을 진짜 화장실이 같이 있는 욕실로 만드셨다. 


그러니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굳이 그걸 왜 만드는지 또 의아했다. 


외가 분들이랑 더 친한 편이고, 왕래도 많은데 

엄마는 꿋꿋하게 또 그곳에서 사시고 계시다. 

큰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생각해보면 큰어머니와는 정을 두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에 이번에 가서 알았다. 

아빠를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안 곳곳에 묻어있는 아빠의 손길이 

그저 그 집이 아빠의 손에 의하여 엄마에게 딱 맞춤인 그런 집이 되었고, 

그 집이 엄마에게, 우리에게 아빠이구나 싶었다. 



엄마와 나는 아빠의 품에서 포근히 잠이 들었다. 

수도 없이 많은 아빠의 모습들이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실로 생생하게, 


여름날이면 뜨거운 가마불에서 땀으로 샤워를 하시고도 밝고 명랑한 용환으로 

"상아야, 설탕물 좀 타보고~"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고장난 것들을 고치던 그 손길들이 


엉뚱하고 다정한 장난들이 


생생한 현현으로써 나타났다. 




그렇지. 아빠를 떠날 순 없지.


"엄마, 나는 이제 엄마가 왜 여기 사는지 알 것 같아."

"그려, 다들 나한에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하지만 여기가 딱 맞춤이야."



그렇지.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딱 맞춤이었지. 


새삼 그 사랑의 결과물인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의 존재인지 


삶은 늘 경이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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