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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un 09. 2024

마흔-183 호떡 들고 쭉 가봐

잔정

지난 현충일엔 엄마와 남동생을 보고 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말 몇년만에 시골 장날이었다. 


혼자서 장구경을 갔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을 기피하는 편이라서 장구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낮에 다녀와서 덥다며 물을 한껏 들이켜자 엄마는 이따가 무 모판 사러 갈때 같이 가지 그랬냐고 하셨다. 


그럼 그때 같이 가자며 근데 시장에 호떡가게가 TV에도 나왔다 보다고 줄이 길더라고 말씀 드렸다. 


엄마도 먹어 본 적은 없다고 하시더니, 얼마후 무 모판을 사러가서는 자연스럽게 호떡 가게로 가셨다. 


그때 마침 길을 가다 만난 엄마의 사촌언니 분께도 호떡을 들려보내시고는 사이 좋게 호떡을 사들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이코... 어떻게 새까맣게 생각을 못했네. 어쩐대... 호떡 쟤 것도 좀 살걸."

"상아야, 호떡 들고 쭉~ 그냥 가봐. 쟤가 말건단 말여."


그래서 나는 호떡을 들고 쭉 그냥 갔다. 

잠시후, 뒤에서는 엄마와 누군가가 정겹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호떡 사들고 가는데 쟤는 안 주면 서운해할 거잖아. 그래서 미안해서..."


떡 받을 사람은 생각도 안 할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고보면 어린 시절부터 시골마을에서 자란 나는 

어느날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쌀이라던가, 먹을 것들을 자주 보곤 했다. 


집에 누가 있건 말건, 누가 가져다 놨네 할 것도 없이 

가져다 주고, 가져다 놓고 


지나가다 보이면 이리 와서 같이 먹으라고 손짓하고, 

우리집 일, 다른  일 가리지 않고 서로 같이 도와가며 살아간다. 


지금도, 사실 우리집은 아빠가 없으신데도 그렇게 동네분들의 손길로 망가진 곳이 고쳐지고, 부족한 곳이 메워진다. 



우리 작은 마을엔 평생 어느집 도둑이 들었던 일이 없다. 



뺏기도 전에 주고, 

누가 미워하기 전에 사랑하고, 


뭐 그런 셈이다. 


그러다보니 정이 많다. 

차가 있을 때, 그 작은 경차 하나 유지하는데 월에 최소 50만원 이상이 들었던 건, 차가 있으니 거기에 이것저것 맛있는 것들 사서 싣고, 좋아하는 사람들 주려고 이리저리 다닌 탓이다. 


당연히 주면 어디선가는 받는다.

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더라. 


어쨌거나 정이 너무 많긴하다. 

시골 아이들이란 그런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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