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7구간 중재 ~ 육십령
6차 산행 공지가 떴다. 5차 산행을 빠졌으니 우리 가족은 5주 만의 산행이었다. 여러 집의 날짜를 조율해 집들이를 하려니 한 차 수 쉴 수밖에 없었다. 정기산행 때 빠진 구간은 나중에 따로 걸어서 채울 수 있었다. 그걸 보충산행이라고 했다. 가기 싫다던 아들은 산행을 빠지면 어떡하냐고 했다. 가족끼리 보충산행 하기로 했다. 정리되지 않던 이삿짐들이 손님맞이를 앞두고 일사천리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드디어 사람 사는 모양새를 갖췄다. 세탁기도 설치되고 냉장고도 자리에 딱 맞는 것이 왔다. 등산 짐을 넣는 곳도 현관 장 한쪽에 따로 마련했다. 다섯 번쯤 백두대간을 다녀오면 체력이 올라왔다고 판단했는지 6차 산행거리가 20.1km였다. 덕유산 자락에 백두대간 7구간 길, 중재부터 육십령까지였다. 거리를 보고 둘째는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다. 출발시간이 당겨졌다. 새벽 3시 출발이 새벽 0시로 변경되었다. 앞으로 더워질 날씨에 대비해 새벽산행 연습도 겸한다고 했다. 남편은 길어진 구간보다 잠을 충분히 못 자는 것을 염려했다. 군대에서 잠 못 자고 행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금요일 일찍부터 배낭을 꺼내 놓고 가져갈 짐들을 챙겼다. 물을 충분히 챙겨 오라고 해서 500ml 6병씩을 가져가기로 했다. 물, 간식, 방석, 헤드랜턴, 모자, 명찰을 확인하고 쓰레기 담을 봉투나 물티슈를 추가했다. 날씨에 맞춰 등산복과 모자까지 꺼내 놓으니 산행 때 먹을 점심 준비만 남았다. 둘째는 다시 이전 살던 에 맡겼다. 둘째도 산에 안 가고 친구네 간다니 좋아했다. 다녀와서 이전 동네가 그립다고 울면 어쩌나 걱정되긴 했지만 그리움은 자주 만나면 흐려지니까 아이가 가고 싶은 곳에 부탁해 맡겼다.
20km 때문인지 참석자가 줄었다. 60명이 신청했다. 처음으로 버스 2대로 줄었다. 뱃지대장을 하기로 해서 기계와 부품을 받아다 뱃지 60개를 찍었다. 뱃지가 인쇄된 종이를 동그랗게 잘라 뚜껑이랑 한번 꾹, 핀이랑 또 한 번 꾹 누르면 뱃지가 하나씩 완성되었다. 뱃지를 나눠줘야 하니 참석자 명단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이름과 얼굴이 연결되지 않는 사람들을 확인해 두었다. 산행 전날 밴드에는 무전기 배치표, 의료대장님 위치와 구급함 분포 위치, 저번 산행 때 만난 뱀 때문에 추가주의 사항이 올라왔다. 둘째 하교 후에 친구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춰 데려다주고 돌아와 첫째 저녁을 차려주니 금방 저녁이다. 이번 산행은 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첫째에게 씻고 빨리 누워야 한다고 재촉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첫째에게 얼른 이 닦고 잠이 안 오면 누워라도 있으라 하니 그냥 안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걱정되는 지점만 얘기하고 내일 갈 준비를 마무리했다. 수면 시간 부족을 걱정하던 남편의 퇴근도 늦었다. 열한 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9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누웠다.
“엄마! 늦었어!!”
첫째가 소리쳤다. 핸드폰 알람을 못 들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으니 첫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을 보니 버스에 집합시간이 지나있다. 배낭을 다 싸 놓고 등산복을 입고 잔 터라 양말만 챙겨 신고 새벽길을 질주해 갔다. 버스 집합지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도로 모양이 익어 가능했다. 이렇게 새로 이사 온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되어가고 있었다. 11시 반까지 집합이었고 0시 출발이었다고 했다. 가까스로 출발 전 도착이다. 0시가 다 되어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창 밖에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는 가족이 보였다.
덕유산 휴게소에 내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많았다. 목적지가 대부분 덕유산이고 부처님 오신 날이라 사찰로 가는 버스도 있었다. 눈을 다 못 뜨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낯이 익은 얼굴들이 많다. 다들 잠이 덜 깨 좀비처럼 움직인다. 버스에 돌아가 앉자 나자 잠이 덜 깬 안전대장님이 사람 머릿수를 세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단체 산행을 가능하게 끊임없이 챙기는 손길들 중 하나를 확인했다.
새벽 3시 반에 지지계곡에 도착했다. 아침 보급품을 나눴다. 몸을 깨우기 위해 체조를 했다. 그 많던 관광버스는 어디로 갔는지 등산로에 우리 팀 60명만 헤드랜턴만 반짝인다.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산길이 시작된다. 백두대간 종주를 이미 하시고 후배들 등산을 돕고 있는 정대장님이 아이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멧돼지 소리가 들리고 있으니 여기부턴 조용히 가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웅성거림이 조용해진다. 출발하면서 곧 재잘대기 시작했지만. 새벽 3시 45분, 선두대장님의 산행시작을 알리는 무전으로 산행을 시작되었다. 얼마 안 가 환자가 발생했다. 아침 보급을 먹은 것이 체했다고 했다. 환자를 중심으로 의료대장님과 후미대장님들이 모인다. 의료대장님이 손을 따고 약을 주었다. 괜찮아지기를 기다렸다. 버스는 출발하고 두 시간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체기가 내려가고 컨디션이 점점 좋아져서 다시 출발했다. 헤드렌턴을 하니 선두 위치가 바로 확인되었다. 그리 많이 차이 나지 않았다. 걷다 보니 날이 밝아 오는지 새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나고 잠바를 가방에 넣기 위해 멈춘 것 말고는 해가 뜰 때까지 쉬지 않고 올랐다. 깜깜해서 멈춰서 쉬는 게 더 어려웠다. 아침 6시 45분, 산행 시작 3시간 만에 선두가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했다는 무전이 들렸다. 세상에는 이른 아침에 이미 해발 1300미터에 올라 아침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백운산에서 선두가 후미를 기다려주어서 남편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찍을지 모르는 가족사진을 찍고 아침을 다 먹은 선두는 이동하고, 후미는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키를 넘는 조릿대 숲을 지나며 둘째를 안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이 얼굴이 풀에 쓸릴 것 같았다. 스틱으로 조릿대 사이를 벌리며 빠르게 나아갔다. 갈 길이 멀어 체력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가야 했다. 오늘 산행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인서의 발전이 눈부셨다. 첫 산행에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주변에 부모가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아직 데려오지 않을 때라 내 아이와 함께 가지 않는다는 등산수칙을 이해할 수 없을 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은 가이드대로 충실하게 다른 집 아이들을 챙기고 계셨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인서가 오늘은 엄마, 아빠, 언니를 다 제치고 선두 그룹에서 가고 있다. 쉴 때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쉬는 가족들이 있었다. 사지를 펴고 쉬면 빠른 충전이 가능해 보였다. 긴 산행을 하다 보니 체력을 최대한 아끼고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하게 된다. 등산용 신발, 옷, 스틱 등 장비들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고 뭐가 그렇게 차이가 날까 싶었는데 오늘처럼 긴 거리를 걸어보니 배낭, 스틱의 무게, 신발이 상태가 예민하게 느껴졌다. 아직까지는 선두와 후미가 크게 벌어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봉우리 영취산을 향해 나아갔다. 등산 6시간째인 9시 50분 선두가 영취산에 도착했다는 무전이 들렸다.
다행히 날씨요정이 도와주었다. 더웠으면 물이 부족했을 텐데 날이 흐렸다. 바람 불면 춥긴 했다. 해가 나면 잠바를 벗었다가 풀 숲이 나오면 다시 잠바를 입었다. 날씨와 상황에 따라 입었다 벗었다를 계속했다. 방향표시 종이에 쓰여 있는 시간을 보니 선두와 12분 차이다. 곁에 있는 이들을 격리 하며 계속 나아갔다. 선두가 저 앞에 보여서 따라가도 6분 차이는 났었다. 12분이면 정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였다. 걷는 길이 길어지니 뭐든 이야기하게 된다. 현식이 엄마는 백두대간을 함께 다녀보니 아들이 자기보다 훨씬 잘 가더라고, 아이가 낫구나 싶어 잔소리가 줄었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은 수수께끼를 내기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고인돌 개수가 몇 개인지, 청동기는 어떻게 만드는지 묻는데 학교에서 얼마 전에 배운 것들 같았다. 아이들 안에는 저런 것들이 들어가 있구나.
"학교와 핵교의 차이가 뭔지 알아?"
"학교는 학생이 다니는 거고 핵교는 할머니 손자가 다니는 거야?
"아니, 학교는 '다니는 거'고 핵교는 '댕기는 거'야!"
난센스도 오간다. 걸음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모여갔다.
선두와 시간이 33분 차이로 벌어졌다는 무전이 들린다. 함께 가는 아이들과 조금 속도를 내보기로 했다. 앞사람의 뒤꿈치가 보이기 시작하면 빠르게 가서 붙자고 했다. 아직 앞에 아무도 안 보인다. 뒤꿈치가 나올 때까지 빠르게 가보자 얘들아. 길이 넓어지면 양해를 구하고 앞서가기로 했다. 숨을 헉헉 거리며 가다 보니 앞 팀이 보인다. 선두가 모여있었다. 잡았다! 선두! 긴 거리에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날머리에 시원한 보급품을 떠올리게 했다. 조금만 더 가면 꽁꽁 얼려온 설레임과 시원한 식혜가 있단다 얘들아. 하지만 아무리 힘을 내도 힘들다. 이런 고생을 뭐 하러 사서하고 있나 싶다. 아들과 첫 산행 때 오르막길에서 온갖 짜증을 들으며 왜 데려왔을까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은 아들은 맨 선두에서 가고 있다. 딸아이와 하려는 고생도 그렇게 빛을 발할 날이 오겠지. 스스로 다독여야 끝까지 갈 수 있다.
오늘 가는 20km 산길은 전체 고도변화가 아이스크림 콘에 끼는 종이를 납작하게 눌러 접어 반으로 접은 것과 비슷했다. 고깔 끝점에서 완만하게 끝까지 오르다 마지막에 뚝 떨어졌다. 그 마지막 뚝 떨어지기 직전까지 왔다.
"난 고관절에서 심장이 뛰어"
"난 난 발바닥에 심장이 가 있네"
"난 발가락에서 심장이 뛰어!"
그래, 여기가 바로 마지막 오르막이다. 뛰자!
오후 2시 25분. 산행 10시간 40여분 만에 선두가 세 번째 목표지인 구시봉에 도착했다는 무전이 들린다. 나는 선두 바로 뒤에 그룹에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쯤 지나니 사람들은 힘든 상태를 지나 그 이상의 어떤 상태로 걸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발목이 꺾이려 하는 것을 정신력으로 컨트롤하며 가고 있었다. 몸에 힘을 최대한 빼고. 마지막 800m를 남겨두고 내리막길로 내리 꽂히던 길이 다시 오르막을 한번 크게 오르게 한다. 내리막길 계속되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이 나왔다. 이 구간의 끝은 언제쯤 어떤 모양으로 나올까. 끝을 가늠하며 걷고 또 걸었다. 선두가 버스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육십령이 코 앞이다.
선두를 따라잡겠다고 선두와 3분 차까지 잡았는데 하산할 때까지 결국 선두와 못 만났다. 아이들과 함께 걷다 보니 쉬었다가요, 오줌 마려워요, 신발에 뭐 들어갔어요. 신발 털게요 반복이라 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그래도 중도에 포기한 어린이 한 명 없이 모두 날머리에 도착했다. 그 이후는 식당에 들렀던 기억, 그리고 버스 타서 눈 감았다 뜨니 아침에 버스 탔던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야말로 "레드 썬" 하는 동안 순간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왔다. 모두 하늘에 대고 날씨 요정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60명의 전사가 손에 손을 잡고 20km를 넘고 왔다. 나도 그중 하나라는 게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