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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Oct 21. 2023

끝이 아니다, 1박 2일 산행도 있다.

-  31구간 24.8km , 32구간 13.5km를 걷다. 

20km 산행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 산행 얘기가 나왔다. 이번엔 1박 2일이었다. 백두대간 중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설악산 진부령까지 길을 48개 구간으로 나눠 2주에 한 번씩 다녀 2년 안에 완주하려면 1박 2일 산행을 몇 번 해야 한다고 했다. 숙소 예약을 위해 평소보다 미리 신청을 받았는데 신청률이 저조했다. 신청인원이 40명도 되지 않았다. 1일 차에 31구간  24.8km를 걷고, 2일 차에 32구간 13.5km를 걷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그나마 위치가 소백산이라 산은 평이하고 풍경은 멋있을 거라 했다. 아들과 처음 긴 산행으로 갔던 곳이 소백산이었다. 여러모로 초보자가 가기에 좋을 산이었다. 아무리 쉬워도 소백산 정상에 갔을 때 "누가 여기를 꽃길이라고 했어!"라는 외침이 들려오긴 했지만 정상까지 길이 잘 닦여 있어 쉬운 산이었다. 대장단 회의에서 참가자를 늘리기 위한 대책회의가 이어졌다. 신청을 3개로 나눠서 받기로 했다. 이틀 다 참가하는 조, 이틀 중 하루만 등산하는 조, 보급만 하는 조로 나눠 신청받았다. 그동안 가족들만 보내놓고 산에 오지 않던 아빠들이 보급조로 합류했다. 보급조는 구간 외 길을 걷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차로 이동해 주고, 첫날 저녁식사 준비와 둘째 날 숙소 정리를 맡았다. 차량 섭외가 완료되고 보급팀이 꾸려졌다. 딸은 첫째 날 산행은 빠지고 둘째 날 만 참가하기로 했다. 정민이도 둘째 날만 참가하기로 해서 의료대장님이 숙소에서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다. 24km 산행을 앞두고 신발을 바꿨다. 산행이 네 시간 이상 되면 복숭아뼈가 아파서 발바닥 전체로 걷도록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도 아프기 시작하면 남은 거리를 뛰었다.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신발이 닿을 때마다 아파서 뛰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24km는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끝낼 방법이 없었다. 장거리 등산에는 발목까지 잡아주는 등산화가 좋다지만 나는 복숭아뼈가 드러나는 등산화를 준비했다. 운영진의 노력 덕인지 첫날 7차 산행 91명, 둘째 날 8차 산행 89명으로 신청마감되었다. 지원차량은 4대가 오기로 했다. 


버스 출발시간은 새벽 1시, 집합시간은 열두 시 반이었다. 이제 집합시간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 저번 산행보다 30분이나 늦어졌다고  여유가 있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금요일이 되자 긴장감이 돌았다. 걷다 보면 결국 날머리가 나온다는 마음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3시 30분에 죽령에 도착했다. 소백산의 완만함은 제2연화봉부터다. 이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오르막 4km를 가야 했다. "완만한 등산길이라더니 또 속았네 또 속았어." 한탄이 들렸다. 중1 시혁이는 물을 8병이나 가져와서 너무 무겁다고 했다. 나도 6병을 가져왔다. 이제 비로봉 보이기 시작했다. 잘 정비된 나무 계단을 올랐다. 예쁜 평지 오솔길이 나왔다. 기대했던 바로 그 길이다. 길이 하늘과 닿은 언덕까지 이어졌고 호수를 지나 산길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길이 정말 쉽다고 감탄했다. 무전기에서 15km 남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9km를 걸어왔다. 아침 9시를 지나고 있었다. 

"다시 오고 싶은 곳이네요"

"이 전까지 산행은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오르막은 힘들다. 그래도 숲 속으로 다니다 하늘이 뻥 뚫린 길을 걸으니 좋았다. 인생 컷을 남길 수 있어 여기저기 사진 찍는 손들이 바빴다.  


국수봉을 지나며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잠도 왔다. 카페인 한 알을 먹었다. 14km를 걸어왔다. 10km가 남아 있었다. 여기부터 내리막길과 간단한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길이 편하고 쉬워지면 '하하 호호'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길이 계속 이렇다면 걷기가 좋아 얼마든지 더 갈 수 있었다. 중학생들의 대화도 흥이 넘쳤다. 여기저기 길 따라 이야기가 흘렀다. 이제 5km 남았다. 발바닥, 발목, 무릎, 허리, 엉덩이, 팔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발목을 스치는 풀과 시원한 바람이 느껴질 뿐이었다. 무전기에서 후미에 물이 부족하고 했다. 내가 있던 그룹에서 물을 두고 가기로 하고 알렸다. 각자 남은 거리에 마셔야 할 물을 제하고 여유분을 모아봤다. 꽤 되는 양이 모였다. 날머리까지 4.2km 남은 구간에 물을 모아두었다. 너무 긴 구간이라 뒤쳐지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초반부터 선두에 바싹 붙어 갔는데 신의 한 수였다. 선두에 왔어도 마지막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날머리가 다가오자 선두대장과 버스가 올 지점과 시각을 정해 버스대장님께 알렸다. 주중에 현충일이라 3차 산행을 못 갔던 사람들끼리 보충산행이 있었다. 14구간 우두령부터 괘방령까지 13.1km 룰 보충산행했다. 보충산행 다녀왔던 사람들이 이번주에 걷게 되는 거리를 계산했다. 오늘 24.1km를 걷고 내일 13.5km까지 걷는다면 보충산행 거리까지 더해 50km 이상을 걷는 셈이었다. 굉장한 한 주다. 걷기 신기록을 세우는 주가 될 터였다. 마지막 구간이 힘들었는지 선두도 물이 부족해졌다. 후미를 위해 물이 다 놓고 와서 모두들 여분이 없었다. "이제부터 한 시간 반은 물 안 마셔도 갈 수 있어!" 선두대장님이 정리해 준다. 그래, 정말 다 왔다. 4km를 남기고부터 걷는 게 지루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길을 걸으며 지루하고 졸리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 같이 으쌰으쌰 해보았지만 금세 지루하고 힘들어졌다. 길은 뱅글뱅글 잔잔한 내리막을 만들며 하산하게 했다. 해발은 아직도 997m였다. 도대체 날머리는 언제 나오는 걸까. 배가 고파져서 가방에 남은 간식을 털어 먹었다. 미니초코바와 청포도 사탕이 남아있었다. 허기가 금세 가시고 든든해진다. 욕구가 단순해져 갔다. 무전에선 후미와 두 시간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후미는 오후 6시가 넘어야 끝난다. 후미에 오고 있는 사람들을 꼽아보며 걱정을 하고 있는데 급경사가 나왔다. 선두에 가던 남자 중학생들이 먼저 가겠다고 자리다툼을 하다가 선두대장님께 혼이 났다. 내리막길은 비가 왔는지 길이 좋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에 물 찾는 소리가 날 때마다 마지막 물을 다 먹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후미를 위해 싹 다 내놓고들 왔구나. 발의 바깥날로 찍으며 한 발씩 내려갔다. 한 명씩 천천히 서로를 살피며 갔다. 뭐야! 다시 오르막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고개를 젓고 있는 내 곁에 오르막이 더 이 상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초등학생이 있었다.  


"미끄러졌어! 미끄러졌어!"

"옆으로 내려오면 좀 나요."

"와!!! 예에~~~ 이야~~~ 이예~~~~에~~"

"저 밑에. 헉! 헉! 도로가 보인다."


새벽 4시에 시작한 산행이 오후 4시 20분이 되어 끝이 났다. 선두 기준 12시간 7분이 걸렸다. 무전으로 선두가 날머리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반가운 시멘트 길이다. 한쪽에 보급팀이 과자와 컵라면을 준비해 뒀다. 아이스박스엔 시원한 음료수도 가득 있다. 천국에 온 듯했다. 여기서 쉬었다가 보급팀의 차가 오면 차로 구간 외 길을 내려가기로 했다. 이런 기획을 한 기획대장님께 찬사가 쏟아진다. 짧은 산길이라 좌석이 꽉 차면 트렁크에도 앉았다. 여자 세 명이 트렁크에 뒤롤 보고 앉아 깔깔대며 내려왔다. 무려 24km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감격에 취해 자리가 불 편 걸 느낄 새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은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후미가 있는 곳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내리막길은 그냥 와도 쉽지 않았는데 비까지 오면 더 힘들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 씻고 바비큐가 차려진 마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사람들은 삼삼 오오 모여 후미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나서야 후미가 탄 차가 숙소로 들어왔다. 


"정말 눈물 나려고 해." 

"정말 힘들었겠다." 

"감동이 있네요 진짜."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위대한 도전을 마친 이들끼리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려온 후미에게 아낌없는 축하가 쏟아진다. 후미를 위해 따로 남겨둔 음식들이 차려졌다. 키보다 높이 쌓은 장작이 타고 있는 캠프파이어에 아이들이 뜨거워 얼굴을 가리고 팔을 길게 뻗어 마시멜로우를 구웠다. 불이 세서 거의 까맣게 타버려도 그저 즐겁다. 오늘 산행 얘기를 나누며 밤새라도 얘기할 수 있으련만 우리에겐 내일의 산행이 남았다. 보급팀에 뒷정리를 부탁하고 일찍 숙소로 들어가야 했다. 딸이 설아네 방에 놀러 가서 데리러 갔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모여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설아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등산을 잘해?" 동그란 원 안에서 딸이 설아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계속 갈 수 있어." 답을 듣고 궁금해졌다.  

"설아 그렇게 가니?"

"아니 나는 그냥 가." 우와! 인생 2회 차를 사는 듯한 답이다. 설아는 오늘 24km 구간도 완주했다. 그야말로 들머리부터 날머리까지 그냥 걸었다. 


등산 2일 차 날이다. 아이들에게 등산복을 입혀서 재웠고 현관 앞에 배낭을 싸놨어도 아침은 바쁘다. 쓰레기를 버리고 키를 숙소에 남는 이를 찾아 부탁했다. 버스는 후미부터 타서 들머리로 이동했다. 어제 후미로 온 사람들 중에 오늘 산행을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오늘 산행은 후미와 선두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오늘은 후미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후미 단골인 딸과 나도 앞그룹으로 출발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라 잠이 덜 깬 딸이 쳐졌다. 길이 좁아 옆으로 피할 곳도 없다. 길 옆에 사람 하나 서있을 곳이 있는 곳에서 한쪽으로 비켜서길을 내줬다. 어제 산행을 마치고 사람들은 등산이 늘었는지 오늘 산행을 빨리 끝내고 싶은 건지 지나가는데 '쓱', '쓱', 소리가 났다. 우리 뒤에서 시작했던 언니, 오빠들이 추월해 가고 선두라 맨 후미에서 왔을 아빠와 오빠까지 딸을 지나쳐가자 우리가 후미로 남았다. 영차, 영차. 옳지, 옳지! 해가면서 딸을 북돋았지만 후미대장님과 만나게 되자 딸이 울었다. 조금 앞서 갔던 정민이도 오래 쉬다 산행을 온 탓인지 힘들어했다. 오르막으로 시작한 구간이 끝이 없었다. 딸을 끌어주려 스틱으로 기차를 만들어 가고, 등을 밀고 갔다. 사탕도 주고 딸이 좋아하는 언니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어서 가서 만나자고 했다. 간신히 언덕하나를 넘었다. 지도상에는 남은 길이 평탄하다 했는데 지도가 맞은 적이 없었다. 오르막을 세며 가다 보면 지도에 표시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어느덧 3시간 50분째 산행 중이었다. 길이 쉬워지니 딸은 어제 후미로 온 비 맞고 들어온 오빠들이 얼마나 꼬질꼬질했었는, 멧돼지가 얼마나 똑똑한지 얘기했다. "나 천천히 잘 가고 있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춤추다가 뛰다가 하면서. 그렇지?" 대답을 듣기 위한 말이 아니고,  그냥 아이 안에 것이 말로 흘러나왔다.   


오르막이 나오면서 여지없이 딸의 칭얼거림이 시작됐다. 이제 마구령으로 내려가면 점심보급이 있다. 마구령에는 산과 산 사이로 난 도로가 나 있어 힘든 사람들은 여기서 하산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국 힘들어하는 딸과 정민이는 마구령까지만 가기로 했다. 마구령에 도착하니 그렇게 칭얼대던 아이들이 기운이 돌았다. 얼굴이 밝아졌다. 나와 정민이 엄마도 아이들과 같이 하산하려 했다가 같이 하산하는 어른들이 있어 남은 구간은 걷기로 했다. 마구령부터 11km, 4시간 30분 더 가기로 했다. 


둘째 날 산행은 13.5km로 짧았다. 그런데 날머리에 도착했는데 구간 외가 3km 남았다고 했다. 그것도 아스팔트 평지길이 아니라 가파른 산 하나를 넘는 구간 외 길이었다. 사람들이 누구에게 속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속았다는 탄식을 했다. 이틀에 걸친 산행으로 피곤할 대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날머리만 생각하며 몰아왔던 지라 체력이 바닥났다. 바닥난 체력에 멘털까지 부여잡고 다시 3km 산행을 더했다. 300m만 더 가면 보급이 있을 거라 하는데 그 300m가 얼마나 길던지. 더 걷고, 계속 걸었다. 파란 보급테이블과 초록 아이스박스가 보일 때까지. 둘째 날 총거리는 마루금 13.5km, 구간 외 3km. 결국 이튿날도 16km를 걷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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