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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Oct 21. 2023

결심했어, 나 산에 안 갈 거야.

- 15구간 괘방령 ~ 추풍령 11.0km 

새벽에 일어났는데 식은땀이 났다. 요즘 더워지며 나던 땀과 좀 달랐다. 쫙하고 배어 나오며 주르륵 흐르는 땀이었다. 일어나 움직이는데 위장 움직였다. 꾹 하고 눌린 후 비틀어지는 과정이 느껴졌다. 화장실로 뛰어갔다. 노란 위액이 나왔다. 오전에 운동하기로 약속했는데 못하게 되었구나. 한 주 전에 같은 시간 체육관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녔던 생각이 났다. 몸이 갑자기 왜 그러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 움직이면 다시 위에 경련이 나서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다시 쉬기를 반복했다. 남편이 큰아이 등교를 시켜주고 출근하기로 했다. 둘째를 공동현관까지 배웅하고 돌아와 다시 누웠다. 오늘 같이 운동하기로 했던 친구 중 간호사가 있었다. 전화로 내 상태를 듣더니 수액을 맞으라고 권했다. 주말에 백두대간 산행이 있는 게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번 산행 할 수 있을까?


힘들면 내려오더라도 가보기로 했다. 도착하면 또 어떻게든 산을 타게 될 것도 이제 안다. 산에 계속 오는 사람들은 힘들어 안 오고 싶다가도 빠졌다가 다음에 오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계속 오게 된다고 했다. 출발시간이 새벽 3시 반으로 미뤄져 두 시간이나 더 잘 수 있게 됐다. 아침 6시에 괘방령에 내려 체조를 했다. 딸이 체조를 따라 하지 않고 서있었다. “엄마, 결심했어. 나 산에 안 갈 거야” 그러던 딸이 인서언니가 다가와 “언니랑 같이 가자”하니 다시 따라나섰다. 딸아이의 발걸음은 아직 느리다. 그동안 빠지지 않은 아이들은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 산 좀 탈 줄 알게 된 언니들은 시작과 동시에 몸이 저절로 나아갔다. 초반에 힘 있을 때 많이 가놔야 한다는 것을 터득해서였다. 그래서 오늘도 계속 추월당하다 후미가 되었다. 빨리 갈 수 없는 게 속상하고 싫다. 나도 컨디션이 안 좋다. 아이를 달래며 갈 수도 먼저 치고 나갈 수도 없어 후미대장님께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후미 대장님이 무전을 해서 딸과 나의 중도하차를 알렸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는 길이라 대장님 없이 아이와 둘이서 내려왔다. 중도하차하는 딸은 점심으로 골른 자기 몫의 우동을 먹을 수 없게 될까 봐 걱정했다. 오늘 구간 뱃지도 못 받는 거냐고 했다. 물론 둘 다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괜찮다고 딸을 다독이는데 내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내려가면서 딸에게 왜 산에 올라가기 가기 싫었는지 물었다. 딸은 내가 왜 우는지 물었다. 


"엄마 진짜로 우는 거 아니잖아?"

"딸을 잘 도와줘서 산을 넘어가게 하고 싶었는데 못 가게 되니 속상하네. 너는 언니들이 먼저 가서 속상했어?"

"설아는 나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하고 기다려주지도 않아"

"빨리 갈 수 있게 된 사람은 기다리는 게 더 어려워."

"기다릴 수 있어! 엄마는 산을 다 통과하고 싶었어?" 

딸에게 오빠 어렸을 때 같이 산에 다녔던 얘기를 했다.

"오빠랑 산에 다닐 땐 엄마가 다 준비해야 해서 힘들었거든. 그런데 여긴 차도 예약해 주지. 숙소도 예약해 주지. 밥도 예약해 주지. 이렇게 편하게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고 싶었지. 안 빠지고 계속 산에 가면 저절로 중간에 가고 선두로 가게 되는데......"

딸은 자기도 빨리 가고 싶은데 못 해 속상했다. 계속 와서 속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딸은 마음을 닫아가고 있었다. 


출발지였던 괘방령에 돌아왔다. 기사님들이 세차를 하고 있어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내려올 추풍령으로 이동했다. 세차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딸은 친구들과 통화하고 싶어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8시가 안 되었다. 토요일 아침 모두가 다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추풍령에서 기사님들은 주무신다고 해서 딸과 둘이 동네를 걷기로 했다. 6월 말인데 그늘 없는 햇볕은 들어갈 수가 없을 만큼 덥다. 딸과 시원한 곳을 찾는데 추풍령 간이역이 있었다. 대기실에 에어컨이 빵빵하다. 역장 없이 직원이 혼자 운영하는 역이다. 기차가 한 대 와서 대기실에 있던 사람을 모두 태워갔다. 하산한다는 무전을 듣고 걱정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벌써 중간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금방 오겠어서 버스로 돌아가서 보급품을 빼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의 위치를 묻는 전화가 오고 선두대장인 남편이 제일 앞장서 도착했다. 아이스박스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도착하는 아이들마다 나눠주었다. 4학년 루아오빠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딸에게 "너는 산은 안 타고 아이스크림은 먹는 거냐?”라고 콕 집는다. 선두그룹에 아들도 있다. 동생을 보자미지 "너는 65,000원 내고 버스 타고 와서 우동먹으러 온 거야?” 한마디 했다. 조금 있다가 중간팀으로 도착하는 언니들과 설아를 맞이해 줬다. 그리고 후미로 들어오는 정민이에게도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었다. 딸의 생각처럼 앞서간 모두가 선두로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그걸 하나하나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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