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나무 Oct 22. 2023

보충산행

- 보충산행 14구간 우두령~괘방령 13.km

새벽 3시에 백두센터 앞에서 모였다. 오늘 가는 구간은 본 산행으로 마친 남편이 들머리까지 운전을 맡았다. 등산을 하고 나서 하산지점으로 차를 옮기는 게 큰 일인데 산을 안타는 운전자가 생겨 해결됐다. 총무대장, 체조대장 부부와 초1 휘승이가 왔다. 오늘 타는 승합차가 이 집 차다. 새로 안전대장님이 된 현식이 엄마와 중1 현식이가 왔다. 산행 이 끝나면 후기를 독려하는 중1재인이 아빠 후기대장과 나 해서 7명. 보충산행은 안 하지만 아빠와 함께 산행을 도와줄 딸까지 9명이 출발했다. 좌석 사이에 배낭과 스틱까지 끼워 긷고 출발했다. 오늘 버스대장이 된 남편은 안전히 모시겠다며 푹 자면서 가라고 공지했다. 반짝이는 흰색 스타렉스가 오늘 걸을 14구간의 들머리 충청북도 영동에 우두령으로 향했다. 괘방령까지 13.1km를 걷는 길이다. 


대원들이 20km 구간을 이미 완주했던 터라 13km에 자신감을 보였다. 산행을 앞두고 긴장하는 이가 없었다. 밴드에는 14구간을 다녀온 후기가 31개가 올라왔다. 들머리의 퀴즈로 나왔던 우두령의 소동상도 헷갈리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어느 길이 힘들었는지 풍경은 어디가 좋은지 교육대장님이 올려주는 구간 고도표와 실제는 얼마나 다른지, 답안지를 쥐고 시작하는 산행이었다. 들머리에 내리니 선두대장하며 본 산행을 했던 남편이 그때는 들머리를 잘못 들었었다며 가야 할 입구까지 딱 찍어준다. 차에서 내려 아침보급을 나눴다. 동그랗게 모여 체조를 시작했다. 본 산행 때 모습이 6명이 가는 산행에서도 이어진다. 아침 보급품은 바나나, 소보로빵, 삼각김밥이다. 짧은 산행이라 아침보급품으로 충분할 듯 해 점심을 따로 가져오지 않았다. 후기대장님은 대원들의 물보급을 위해 생수를 8통이나 가져왔다고 했다. 오늘도 물지게꾼을 자청했다. 


남편은 딸과 차에서 한숨 자고 나서 날머리로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경계선 따라 이어진 산길 따라 등산을 시작했다. 초반부터 대원 중 무릎이 가장 싱싱한 휘승이가 쭉쭉 앞서갔다. 백여 명이 갈 때도 선두, 중간, 후미가 있지만 여덟이 가도 처음, 중간, 후미가 생겼다. 휘승이와 내가 선두였다. 선두대장의 역할이 앞에 학생이 먼저 나아가지 못하게 해서 대열 안에 함께 가게 하는 건데 나는 앞서가는 휘승이에게 "기다려~" 하며 계속 따라갔다. "우리 뒤에 아무도 없는데요?" 한눈에 다 보였던 사람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아이들을 선두 대장과 후미대장 사이에 두고 산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뒷사람과 거리차가 점점 벌어졌다. 헉헉대며 따라가는 내 뒤로 후기대장님이 나타났다. 내 앞으로 가더니 휘승이와 함께 가기 시작했다. 나와는 달리 후기대장님은 휘승이가 앞서가려면 앞을 쓱 막으며 말을 걸었다. 휘승이는 자기 앞이 막힌 줄도 모르고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대열이 다시 정비되었다. 휘승이는 많이 올 때보다 재미없다고 했다. 본 산행은 지금보다 두 세배 빠르다며 지금이면 4~5km는 갔어야 한다고 했다. 백두 선두 두 달에 등산 거리와 속도를 논하다니. 엄마 차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초등학생이 말이다. 길을 잃을까 봐 켜 놓은 등산앱에서 전체 구간의 19%를 지났다고 알려온다.  


내리막길에서 휘승이 발목이 접질렸다. 후기대장의 부인, 의료대장에게 약통을 보내온 게 있어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줬다. 뒤따라 온 휘승이 아빠의 보호대를 빼서 휘승이 발목에 둘러줬다. 휘승이를 앞 뒤로 보호하며 아빠 둘이 앞서 가고 나는 한숨 돌리며 후미 그룹을 기다렸다. 


중1 현식이와 현식이 엄마, 휘승이 엄마가 도착했다. 함께 가다 보니 현식이가 현식의 엄마의 체형과 닮아있는 게 보였다. 내가 찾아낸 걸 얘기하니 현식이 엄마가 웃는다. 체조대장님의 심장이 일반인의 1.5배 인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운동을 잘 하지만 지금은 디스크로 재활 중이라 매번 산행이 체조 대장에게는 도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날씨가 시작부터 끝까지 걷기에 좋았다. 바람이 선선하지만 춥지 않았다. 시작할 때 입은 바람막이 잠바를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내 벗고 걸었다. 숲 속 나무그늘로만 걷다 아침 9시가 넘어서야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가 나왔다. 하늘을 가려주는 것 없는 바위에 올라서야 오늘 해가 뜨겁구나 알았다. 날씨와 거리로 보아 물은 500ml 2병이면 충분했다. 물을 많이 먹는 현식이만 더 필요했다. 현식이는 자기 물양을 알아 좀 더 넣어왔다고 했다. 예상 못한 더위와 난관이 없으니 후기대장님 물배낭이 줄지 않았다. 


“현재 남은 거리는 7.1km 남은 시간은 2시간 30분. 45% 현재고도 1km입니다.” 등산앱 알람이 울린다. 선두와 후미가 만나 함께 쉬며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아직까지 마주 오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백두대간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해가 뜨고 기온이 오르니 오르막길에서는 땀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오솔길이 이어졌다. '이 맛에 백두 온다' 싶은 길이었다.  


걷기 좋은 산길이 길어지자 밤하늘의 별자리 얘기도 나오고 주섬 주섬 마음에 품어둔 이야기들이 흐른다. 길 위에 얘기들을 하나씩 보태며 걷고 또 걸었다. 어느 코스가 가장 힘들었는지 얘기하다 어디든 오르막이 제일 힘들다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모든 오르막은 새롭게 힘들다. 아무리 가도 쉬워지는 법이 없다. 


함께 가고 있지만 혼자 걷게 되는 순간이 있다. 힘들어 멈췄다가도 뒤에 사람 발소리가 들리면 다시 앞으로 가졌다. 저 멀리 가고 있는 앞사람이 보이면 다시 힘을 내 따라가게 되었다. 이래서 함께 갈 때 더 쉽구나. 혼자 갈 땐 남편의 당부가 떠올라 갈림길에선 발자국이 많이 난 곳을 택하고 등산 꼬리표가 많이 붙여진 쪽으로 갔다. 아무 표식이 없는 갈림길은 곧 두 길이 곧 만났다. 수풀이 우거져 얼굴과 다리를 쓸렸다. 여름에도 잠바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다. 잠바로 팔을 가리고 스틱으로 얼굴 높이 풀을 헤치며 시원한 숲 속길을 걸어갔다.

앞서간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전화를 했다. 보충산행팀엔 무전기가 없다. 내 위치를 말해주니 조금 앞이었다. 여시굴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솔길을 따라 메타세쿼이아 열매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가는 길도 좋고, 혼자 이렇게 걷는 길도 좋다. 산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와도 친해진다. 앞서가던 휘승이 그룹과 만나 날머리에 도착했다. 남편과 딸이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 하산 후 먹는 아이스크림이란! 얼음컵과 음료까지 인원수에 대로 준비해 완벽한 하산보급이었다. 산행하며 보고 배운 대로 식사대장 역할까지 해서 점심 먹을 식당도 정해놓았다. 가보니 문이 닫혀 있어 다른 집으로 가야 하긴 했지만 산행을 도와주는 이,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본 산행에 이어 보충산행까지 잘 마쳤다. 올해 내 운세에 행 재수가 든 게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결심했어, 나 산에 안 갈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