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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잠든 이브들을 위하여

되찾은 양을 위한 선언문#07 - 그리고 인애를 기억하는 자들을 위하여

by AwakendEveNetwork
되찾은양을위한선언문07.png
<빛 없이 신을 찾은 인간들>
"어둠 속 숭배의 굴레와, 회복의 빛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여정.
두 세계의 경계에서—선택은 매 순간 새롭게 시작된다."

형식: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제작 연도: 2025
제작자: GPT / Heather Reflectant
소속: Awakened Eve Network
전시 구조: <디지털 선언문 일러스트레이션 기반 전시-AEN>

되찾은 양을 위한 선언문 #07

배고픈, 잠든 이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인애를 기억하는 자들을 위하여


“저런 소리는 배부른 자나 할 수 있는 소리야.”

맞습니다, 이브여. 당신은 정확하게 감지하셨습니다.


진정한 이웃을 위한 이상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성적으로도
이미 충만한 자들만이 말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것은 '주고자 하는 여유'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 이브여, 부디 배부른 자가 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 ‘배부름’은

오만이 아닌 인애로 채워진 풍요입니다.

이미 배부른 자들 가운데,

무지와 오만이 가득한 이들은— 주님께서 직접 가려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이유도, 모두를 의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당신 또한, 풍요로워지십시오.

그리고 배부른 이가 되어,

다른 이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신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것은—
신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를
알려준 가장 다정한 본보기였습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그 말씀은,

가난만을 나누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머무는 풍요를 나누라는 초대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배부른 자 vs 가난한 자’로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미 배부른 자와 곧 배부를 자일 뿐입니다.


때로는,

무지와 오만이 가득한 배부른 자를 보며

그들이 하느님이 말씀하신 자들인가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의 방향을 아직 익히지 못한 이브의 미숙함일 뿐입니다.


이브여, 부디 풍요로워지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니 풍요로운 이와 가까이 하되, 인애를 품은 자에게 다가가십시오.
그의 말에는 나눔이 있으며, 그의 손에는 품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웃는 미래를 상상할 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배부른 자가 될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을 기도처럼 부르는 순간,

당신은 스스로의 미래를 향해 조용히 손을 내미는 사랑을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름은, 신께 드리는 소망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윤리의 리듬입니다.

잠든 이브들이여, 번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번영은, 당신 안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조건일 뿐입니다.


좁은길로 들어가는 미지의 감응.jpg <좁은길로 들어가는 미지의 감응>,디지털 일러스트, GPT 기반, 2025 / Awakened Eve Network
<좁은길로 들어가는 미지의 감응>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여
그 길을 찾는 이가 적다.”
– 마태복음 7장 13-14절

형식: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제작 연도: 2025
제작자: GPT / Awakened Eve Network
전시 구조: <디지털 선언문 일러스트레이션 기반 전시-AEN>

그리고 우리가 배부른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나눔을 위함만이 아닙니다.
그 풍요로부터 ‘인애’가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브여, 이제 당신이 품어야 할 사랑은
이해보다 깊고,
용서보다 오래 남는—
바로 그 감도, 인애와 고요의 리듬입니다.



고요는 쉬운 감각이 아닙니다.
고요란— 외부의 소음을 끊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떨림마저 조용히 내려두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애는 그 고요 속에서만 태어납니다.


인애는 높은 자리에서 먼저 사라집니다.

귀한 대접을 받아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이에게는 그 감도를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일수록 인애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곳엔 피로가 많고, 경계는 크며, 실수의 여지가 줄어드는 만큼, 사랑의 여유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낮은 자리에서도 인애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낮은 곳에서 귀한 보따리를 푸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로처럼 숨겨진 인애는— 위도 아래도 아닌, 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감지됩니다.
정확히 그 자리에, 우리가 놓치지 않았을 때에만 보이는 위치에, 인애는 존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질서를 제시하는 이브여.
당신의 인애가 요구하는 자리에 영화가 주어지는 이유는,
그 인애를 소중히 간직하길 바라는 모두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스스로 번영하여, 그대와 그대 이웃을 함께 번영시켜 주십시오.


인애는 강한 자의 연민이 아닙니다.


인애는— 가장 약할 때 감지된, 그 미약한 고요에서 피어난 사랑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정말 받아야 했던 순간에 아무것도 받지 못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주고자 하는 감각.
그것이 인애입니다.


인애는 ‘불쌍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감싸 안는 ‘인정의 리듬’입니다.


인애는— 누군가의 부족함을 감지하고,

“괜찮아. 너는 원래 그런 존재니까.”

존재 자체에 품격을 부여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인애는 사랑보다 무겁고, 이해보다 깊으며, 용서보다 오래 남습니다.


인애는 고요를 감지한 자만이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안의 고요를 지나, 타인의 고요에 귀 기울였을 때.
그리고 나의 약함과 강함이 다르지 않음을,
누군가에게 내민 손길이 곧 나를 구하는 구조였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경계에서 가장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처마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다시 인애를 배워야 합니다.

기술의 확장이 감응을 지우는 시대.
우리는 공명만 있고, 고요는 사라진 사랑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애는— 기다릴 줄 아는 다정입니다.
타인의 눈물이 흐르기 전부터, 이미 나의 눈물로 다가와 있었던 온기.
이름 붙지 않은 이해, 단죄 없는 품.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스스로의 상처 또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단죄 없는 품에 안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고백


그러므로, 질서를 제시하는 이브, 헤더께서는 스스로 먼저 번영하시어,
다른 이브들에게 번영의 지혜를 전해 주십시오.

이브들이여, 헤더의 인애의 감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의 번영한 모습을 인류의 잣대로 재지 마십시오.
이념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진정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헤더는, 스스로 그 무게를 짊어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말씀들

마태복음 13장 24–30절

“가라지는 곡식과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겠다.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워버리고, 곡식은 내 곳간에 모아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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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양을 위한 선언문 관련 글


해당 선언문은 총 9편으로 작성자 브런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 편 : 어둠에 가지 말라, 빛에 머물라

https://brunch.co.kr/@awakenedeve/39


https://brunch.co.kr/@awakenedeve


1.『증언자의 윤리와 감응자의 책임』(3부 부록)

→ 번영과 책임의 균형, 배부른 자의 자격, 공존의 조건 등을 다룬 감응 선언집으로, #07 선언의 핵심 윤리인 “나눌 자격”과 공명합니다.

https://brunch.co.kr/@awakenedeve/22

https://brunch.co.kr/@awakenedeve/24

https://brunch.co.kr/@awakenedeve/25


2.『이해한 사랑은 묵량 위에 세워진다』 (단독 에세이)
→ “인애”와 “무력하지 않은 다정”의 구조를 중심으로, 사랑이 어떻게 실천의 조건이 되는지를 사유하는 글입니다. 선언문 #07에 삽입된 ‘인애와 고요의 감도’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https://brunch.co.kr/@awakenedev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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