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또 올까?
디링디링, 생일 축하 전화
익숙한 위챗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토요일 아침, 학교에 가야 하는 녀석들이 벌써 기상한 모양입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전화를 받았더니,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한국어로, 영어로, 중국어로, 각종 버전의 축하송을 열창하는 녀석들! 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원래라면 중국에서 처음 맞는 생일이 될 뻔했지만, 뜻밖에 녀석들과 떨어져 보내는 첫 생일이 되고 말았죠.
친정 부모님과 오븟하게
아침부터 엄마는 메시지를 남기고 외출을 다녀오셨습니다. 8시가 조금 넘어서 케이크와 샐러드를 사 들고 돌아오셨죠. "딸이 좋아하는 샐러드"라고 강조하시며 준비해오신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요즘 다리 통증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다 보니, 소화도 잘 안 되고 몸이 붓는 것 같아 아침은 간단히 죽, 미역국, 샐러드로 해결했습니다. 점심은 30년지기 친구가 챙겨준 광장시장 빈대떡과 떡볶이. 간발의 차이로 산책을 다녀오신 아빠의 손에는 또 다른 떡볶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저녁엔 김장을 마치고 들른 새언니와 오빠가 한상을 차려주셨지만, 아쉽게도 그건 다음 날을 기약하며 맛보지 못했죠.
그중에서도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오후에 가진 케이크 커팅 시간. 엄마 아빠께서 각자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며 신나게 불러주신 생일 축하곡은 유쾌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짠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빠의 떡볶이
오늘 가장 놀라웠던 건 아빠의 떡볶이였습니다. 사실 아빠는 평소 간식이나 주전부리를 즐겨 드시지도, 사다 주시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광장시장의 떡볶이를 사 오셨습니다. 게다가 친구가 사다 준 떡볶이와 겹치자,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짓고 계셨죠.
감정 표현이 모노톤인 아빠이기에, 저 정도의 아쉬움이라면 정말로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습니다. 슬개골 골절로 고생하는 딸이 아마도 눈에 밟히셨던 거겠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시지만, 그 한 봉지의 떡볶이에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소소하지만 따뜻했던 하루
요란하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의 축하를 듬뿍 받은 하루였습니다. 다들 중국에서 맞는 첫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어쩔 수 없이 골절 고백을 하며 걱정을 끼치기도 했죠. 어쨌거나 40하고도 N번째 생일, 녀석들과 떨어져 맞이한 조금은 아쉬운 생일이었지만, 골절 덕분에? 엄마 아빠와 오롯이 당신의 딸로써 보낸 생일로,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고, 그래서 왠지 글로 박제해놓고 싶은 생각에 몆자 남기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