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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지연 ㅣ 어썸 틴쳐 Nov 27. 2024

천천히 해. (만만라이)

조급증을 가진다고 해도, 나아지는 것은 1도 없다.

지수야, 잘 생각해 봐 오바마는 55살에 퇴직을 했고,
트럼프는 70살이 되어서야 대통령이 되었어.
너 말이야, 다른 사람이 너보다 조금 더 빠르게 걸어 나간다고 부러워하지 마.
사람마다 발전 시기가 다른 거니까. 천천히 해.

「智秀,你想想,奥巴马55岁就退休,特朗普70岁才开始当总统.
你啊,别羡慕别人比你走得快,每个人的发展时区是不同的,慢慢来.」

그래서 저는 가끔 좌절을 겪을 때면 머리와 마음속에 다시 되새기는 것 같아요.

“만만라이! 「慢慢来!」”

<미코 보는 중국일기>, 민지수 - 밀리의 서재

1-4반 료쯔옌 (柳知妍)


어학당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에 와서 가장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습니다. 수업을 돕는 안내 직원들 중에는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들도 있었고, 그들이 술술 쏟아내는 중국어를 듣는 순간,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시아계가 아닌 백인과 흑인들이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노력과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중국인이 아닌 사람에게서 중국어를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어학당에 등록 후, 레벨 테스트를 받는데, 제 수준은 너무나도 명확해서 테스트 없이 바로 1반에 배정되었습니다. 수업 전에 위챗 그룹에서 반 배정 및 수업 안내를 받았습니다. 1반은 총 4개 학급으로 이루어졌고, 30명 정도가 배정된 꽤 큰 반이었습니다. 저는 1-4반 료쯔옌(柳知妍)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한자 이름이 어떻게 읽히는지 몰랐던 저는 출석부에서 제 이름을 부를 때 귀를 쫑긋 기울였습니다.




당황스러운 첫 수업시간


제 첫 수업은 당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업에 30분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선생님과 반 친구들 모두 모르고, 수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았지만 기다릴 수는 없었죠. 문이 잠겨 있길래 손짓으로 열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친구는 손가락으로 다른 문을 가리켰습니다. 앞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인가 싶었지만, 그냥 그 친구가 열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앞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자 맨 앞자리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수업은 중국어로 진행되었고, 문법 수업이었지만 대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폭망!"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몇 페이지인지도 모른 채, 이제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선생님이 큰 지휘봉을 들고질문을 던지시며 저를 지목했습니다. 물론 대답은 "몰라요"였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크게 표현하며 답했죠.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다


우리 반은 다국적입니다. 한국인 8명, 투르크메니스탄 8명, 러시아 4명, 일본인 2명, 카메룬 2명, 아프가니스탄 2명, 라오스 1명이었고, 한국인 중에는 30대 초중반 엄마들도 있었습니다. 일본 엄마들은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젊어 보였고, 결국 제가 나이로는 제일 늙은 학생이 된 셈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17세에서 20대 초반 사이였어요.



"만만라이" 慢慢来 - 천천히 가자


반 친구들의 수준은 다양했습니다. 한국 엄마들은 다들 중국어 실력이 꽤 괜찮았고, 한국 학생들 중에는 HSK 3급을 따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는 꼴찌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못 하고,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은 한자 기반이라 쓰는 데 어려움이 덜했고, 발음은 달라도 기본적인 단어는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친구들은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도 잘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죠.


특히, 한자를 전혀 못 쓰는 친구들은, 그저 한 글자씩 그리듯이 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시간도 꽤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말은 잘하지만 한자는 거의 못 쓰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 친구들은 한자 대신, 병음으로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


수업 시간 동안 2시간 30분을 한 번에 듣다 보니,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리에 쏟아져서 필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을 찍고, 중요한 발음은 녹음을 해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수업을 따라가도 될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언어 실력이 늘지는 않으니, 천천히, 꾸준히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필기도 오랜만이었고, 한자를 본격적으로 쓰는 것도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라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눈도 침침해져서 잘 보이지 않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꾸준히"라는 생각을 되새기며 수업을 따라갔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착한다"


답답하고 힘들 때마다, "천천히라도 내 속도대로 가보자"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결국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할 테니까요. 이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엔 언어 능력도 자리를 잡고, 일상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니하오" 외에도 더 많은 중국어를 자신 있게 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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