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전통 상차림 Supra
원망스러웠다. 추석 기간 연휴를 틈타 가족과 블라디보스톡 여행에 왔지만 급한 업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을 등지고 아침 일찍 카페에 자리를 잡으며, 블라디보스톡 유명 카페에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나의 노고를 블라디보스톡 최고의 점심으로 보상하겠다고 다짐하였다.
Supra로 정했다. Supra란 조지아어로 ‘식탁보’다. 축배가 끝없이 이어지고 힝깔리와 하차푸리, 바비큐 등으로 푸짐하게 차려져 상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은 조지아 전통 상차림을 칭한다. 조지아(Georgia)는 소련연방이 붕괴되며 독립한 동유럽 국가이며, 조지아 요리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서 두 대륙의 영향을 받아왔다. 동서양의 식문화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신비롭고 묘하게 느껴졌으며, 상다리가 부러지는 Supra를 기대하였다.
독특한 의상을 입은 서버, 벽에 걸린 거대한 형형색색의 양탄자들, 손님들의 즐거운 수다, 흥겨운 음악, 맥주와 와인. 이곳은 축제였다. 자리를 기다리며 받은 서비스 와인으로 축제에 당장이라도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최고의 요리를 주문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메뉴를 치열하게 공부하였다. Supra는 한국어 메뉴판을 제공하고 있었으며, 먹는 법 또한 친절하게 설명되어있어 메뉴 결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리에 안내받자마자 이미 결정을 마친 메뉴를 거침없이 주문하였다. 새우 힝깔리, 양고기 샤슬릭, 아자르식 하차푸리와 서버가 추천하는 조지아 와인을 주문하였다. 아자르식 하차푸리(Khachapuri)가 먼저 나왔다. 하차푸리는 조지아의 국민 음식으로 돛단배 모양의 빵 속에 치즈와 달걀노른자가 올려 있는 전통 빵이다. 반드시 손으로 먹으라는 메뉴판의 설명에 손으로 빵을 찢어 치즈와 노른자를 찍어 먹었다. 촉촉한 빵을 씹으니 치즈의 풍미가 가득 찼다. 조지아의 Imeretian와 Sulguni 전통 치즈가 다소 짭짤하였으며 촉촉한 빵과 고소한 노른자는 다소 자극적이었지만 혀를 깨워주는 맛이었다.
곧이어 양고기 샤슬릭이 나왔다. 샤슬릭(Shashlik)은 중앙아시아에서 전파된 러시아식 꼬치구이다. 먹음직스럽게 큰 덩어리로 잘려 나온 양고기를 바로 베어 먹었다. 겉면을 씹자 각종 향신료가 나를 반겼으며, 깊숙이 베어 물자 양고기의 육즙과 육향, 그리고 숯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숯불로 구워져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여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양고기를 가득 머금고 고수와 채소를 입안에 추가했다. 미각과 후각의 흥분은 극에 달했으며, 매우 호화스러운 한입이었다.
다음으로 나온 새우 힝깔리(Khinkali) 또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힝깔리는 조지아식 만두로, 만두피가 매우 두꺼운 딤섬이 연상되었으며 텁텁한 식감이 날 것 같아 우려되었다. 메뉴판에 설명되었듯이, 꼬리를 잡고 뒤엎어 한입 물었다. 두꺼운 만두피 속 새우가 입안을 육즙으로 단숨에 촉촉하게 해주었으며, 나의 우려도 씻어져 나갔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먹으라는 설명을 따르지 못하고 우걱우걱 해치워버렸다.
Supra의 고향 먼 나라 조지아,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통해 잠깐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고단했던 아침의 시작을 제대로 보상하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나였다. 하지만 친절한 서버, 경쾌한 음악, 사치스러운 요리,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 나의 몸과 마음의 긴장은 풀렸다. 원망스러운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Supra만이 존재하였다. 앙증맞은 편지 봉투에 계산서가 담겨 나왔다. Supra에서의 경험을 머나먼 한국까지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 하루가 특별해지는 식사
★★☆ 좋은 식사
★☆☆ 평범한 식사
☆☆☆ 최악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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