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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some Day to Eat Oct 11. 2018

[진수성찬] 미슐랭 2스타 권숙수

미슐랭 2스타 권숙수


주안상 : 김포금쌀로 빚은 술과 6가지 안주

    콧대 높다. <권숙수>의 첫인상이다. 어머니의 생일에 특별함을 더하기 위하여 권숙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하지만 예약 전화를 하자,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과 함께 온라인 예약 안내 문자를 전송받았다. 그리고 점심 테이스팅 코스만 가능하며 식사 금액 전액을 사전에 결재해야 예약이 완료되었다. 또한, 손님 나이 제한(12세 미만 입장 불가), 복장 규정, 1인 예약 불가 등의 안내된 내용을 읽어보면 정감 넘치고 친근한 숙수(‘전문 조리사’의 옛말)가 아닌 콧대 높고 건방진 숙수가 연상되었다. 사극 드라마의 영향인지 ‘숙수’라는 단어에서 임금 앞에 한상차림을 차려놓고 머리를 조아리며 대기하는 대령숙수가 머릿속에 그려졌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상상하였던 첫인상은 아니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미쉐린 등)으로부터 인정받은 권숙수다. 콧대 높은 권숙수가 내어줄 요리가 어머니의 하루를 얼마나 특별하게 만들어 줄지 기대되었다.     



식사하며 메뉴를 볼 수 있도록 리스트가 적힌 작은 종이

점심 테이스팅 코스

우리 술과 작은 안주를 곁들인 주안상

새우를 채워 쩌낸 호박꽃과 잣 국물

방아소스를 곁들인 대게전

트러플 국수

태양초를 이용한 제철 생선찜

그 유명한 한우 떡갈비

해남의 가을 ; 무화과 도너츠와 콤포트 고구마 아이스크림, 홍시 젤리

다과와 무화차     


    

훌륭한 색감 : 그릇, 잣 국물, 호박꽃

    시간에 맞춰 권숙수에 도착하였다. 매우 모던하고 각져 있는 깍쟁이 인테리어다. 쫙 빼입은 서버는 분명 친절하였다. 하지만 서버의 미소가 감정이 메말라있다 느껴졌다. 조그만 유리창 너머 보이는 주방에도 열정 넘치는 요리사들이 아닌 시스템 명령어가 입력된 로봇이 있었다. 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분위기 속, 포근함이 느껴졌다. 권숙수는 낮은 테이블 위에 작은 개인 테이블이 놓여 있다. 한국적이면서 앙증맞은 이 테이블은 권숙수의 상징이다. 개인의 공간이라 느껴지는 이 테이블 앞에 앉으니, 왠지 모르게 포근해졌다. 빠르고 날카롭게 돌아가는 쳇바퀴들이 나와 이 귀여운 테이블을 위한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작은 테이블이 주안상으로 아기자기하게 가득 찼다. 6가지 작은 안주와 김포금쌀로 만들어진 전통주가 나왔다. 6가지 안주는 설명이 필요 없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하지만 주안상의 주인공은 당연 주(酒)였다. 쌀로 빚은 이 전통주는 목 넘김이 매우 부드러웠으며, 쌀향이 기분 좋고 섬세하게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입안이 깔끔해지고 입맛이 돋았다.

    다음으로 파란 국그릇이 뚜껑과 함께 나왔다.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이 작은 국그릇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서버가 뚜껑을 열고 잣국물을 부었다. 곧이어 고소한 잣향이 올라왔다. 특히 서버가 잣폼이라고 설명한 살짝 응고된 이 액체는 두부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 풍미가 매우 뛰어났다. 기분 좋게 으스러지는 이 잣폼은 입에 넣자마자 혀를 감싸 안았으며 온몸의 긴장은 풀려버렸다. 포근하고 풍미 넘치는 이 잣폼은 매우 푹신하면서도 호화스러운 베개 같았다.

사치스러운 콩국수

    다음으로 나온 대게전은 분명 대게의 맛이 살아있으며, 처음 접하는 방아소스와 재미난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인상 깊은 맛은 아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트러플 국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국수 그릇의 뚜껑을 열자, 콩국수 위에 얇게 슬라이스 된 트러플 버섯이 올려져 있었으며, 트러플 향이 공격적으로 후각에 침투하였다. 마치 조그만 상자를 열어 보물을 찾아낸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깐 동안 트러플 향에 집중했다. 그리고 트러플과 면을 콩국물에 잘 버무려 입으로 모셨다. 콩국물은 거품과 같은 식감이 났으며 매우 고소했다. 콩 거품 속 쫄깃쫄깃하고 꼬들꼬들한 면이 씹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콩국수’ 하면 냉기에 걸쭉한 콩국물과 함께 면이 투박하게 담긴 것이 연상된다. 권숙수의 트러플 국수는 내가 경험한 가장 사치스러운 콩국수다.

"그 유명한 한우 떡갈비"

    이후로 나온 생선찜과 메인인 한우 떡갈비 또한 좋은 재료를 잘 살린 빼어난 요리였다. 권숙수 런치 테이스팅 코스의 메인 메뉴로 떡갈비 구이, 등심구이, 장어 솥밥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떡갈비 구이를 선택한 이유는 “그 유명한 한우 떡갈비 구이” 이름이 궁금증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이유가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소문이 자자할 정도의 훌륭한 요리이기 때문인지 궁금했다. 적당히 다져진 한우의 식감과 육즙이 뛰어났으며, 가니쉬 중 장아찌에 말려진 밥이 짭조름하고 떡갈비와 매우 어울렸다. 뛰어난 요리임은 틀림없지만, 앞의 메뉴들이 준 만족감에 비하진 못하였다.     


   무화과 도너츠, 아이스크림, 젤리, 다과와 차 등으로 코스가 끝났다. ‘콧대 높은’ 첫인상과 철저하지만 차가운 이미지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특히, 베개처럼 푹신하고 부드러운 잣폼을 먹을 때 긴장과 의문이 풀리며 말끔히 사라진 듯하다. 아쉬운 점은 생선 요리와 메인 요리가 분명 좋은 요리임은 틀림없지만 앞서 받은 감동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점과 양이 다소 적어 포만감을 느끼진 못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권숙수가 콧대는 높지만, 손님에게 요리를 낼 때까지 치열하고 끊임없이 요리 연구를 하고 있음이 분명 느껴졌다.     


★★★ 하루가 특별해지는 식사

★★☆ 좋은 식사

★☆☆ 평범한 식사 

☆☆☆ 최악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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