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평범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 부끄러운데, 감격스럽다

by 카멜레온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라는 책을 읽으며, 사회의 여러 기준과 인정에 길들여진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부끄러움을 무시하려고 했었고, 그럴수록 내면의 불안함을 커졌던 것 같다. 알고 있기에,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기업 중 한 곳인 배달의민족의 구성원들이 쓴 책이다. 일에 대한 여러 관점들이 담겨있는 책인데, 그중 [일 잘하는 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부터 안 읽었는데 공감돼버리는 제목이었다.


일 잘하는 '척'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충성심, 언어 따라 하기, 있는 척 등등 읽으면서 내가 잘하는 것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읽으면서 묘한 쾌감, 즉 내가 지금까지 회사에서 인정받았던 이유들이 소위 잘 나가는 누군가가 제시하는 방법이라는 쾌감이었다. 그리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단어가 나왔다. '가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은 결국 '척'에 대한 방법이다. 즉, 진짜가 될 수 없는 가짜의 방법이란 것이다. 가짜는 아무리 잘해도 가짜이다, 절대로 진짜가 될 수 없다. 나는 이를 너무 잘 알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당할 때가 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에선 결국 '척'하는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라고 한다. 감격스러웠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래 이거다!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소름 끼치는 저자의 관점에 정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척하는 인생에 느껴야 할 감정은 두려움이 아닐 수 있지만, 결국 척하는 사람은 두려움 또한 척하는 행동으로 숨긴다. 이미 이런 쪽으로는 전문가이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만, 본인은 안다, 시한폭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근데,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조금 더 자극적인 단어로,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면?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절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다만, 척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즉 나 같은 사람들은 인정 욕구가 크고, 의미 있음에 중요성을 잘 안다. 즉, 부끄러움을 느낄 때 이를 자기 계발과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나는 오늘 나에 대한 기회를 본 것 같다. 부끄러움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나는 부끄러움, 수치스러움, 비판, 부정적 피드백에 매우 취약하다. 이를 받거나 듣지 않기 위해 산다고 할 만큼 나에 대한 평판을 좋게 만들려고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한다.


지금부터는 부끄러움을 품어보려고 한다. 누군가 나의 척을 알아봐 주면, 여전히 부끄럽고 당황스럽겠지만 고맙다고 해 보려고 한다. 부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려울 것 같다, 아마 본능적으로 이를 거부하려고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진짜가 되고 싶다. 진국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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