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 5일 차 '요가'로 수련하기
1월 7일 수요일. 오늘도 세부 막탄 마리바고의 하늘은 맑다.
늘 한식으로 든든하게 차려지던 아침 식탁에 오늘은 토스트가 올라왔다.
노릇하게 구워진 식빵 두 조각, 과일 몇 조각, 사과잼과 버터, 그리고 커피.
한국에서 출근 준비로 바쁘던 날마다 준비해 주던 바로 그 아침 식단이다. 그 기억 때문인지 아이는 이런 식단이 참 좋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어 주던 딸아이의 성향은 해외에 나오고 나서야 더욱 선명한 장점이 되었다.
작년 베트남 여행에서는 향신료가 강한 음식 앞에서도 하루 한 번은 꼭 쌀국수를 찾았고, 반미 샌드위치도 유난히 맛있게 먹었다. 덕분에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학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집 아이들이 끼니마다 과일이나 김, 라면으로 급히 식단을 대신할 때 딸아이는 반찬 투정 없이 밥을 말아 시원하게 비우곤 했다.
그 모습이 괜히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이번 한 달 살기에서도 먹을 것은 현지에서 해결하겠다고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온 엄마와, 그 선택을 말없이 따라와 주는 아이. 토스트 위에 고마운 마음을 차곡차곡 올려놓고서 우리는 조용히 아침을 나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오늘은 어학원 동기 엄마들과 함께 요가원에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보고 싶었던 요가원이라 구글 맵에 저장해 두었던 곳인데 마침 어제 먼저 다녀온 이들이 괜찮았다며 권해 준 곳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해왔던 운동이 있다면, 단연 요가다.
필라테스, 헬스, 다이어트라는 이름 아래 시도해 보지 않은 운동이 없을 만큼 여러 가지를 거쳐 왔지만, 끝내 오래 남은 것은 요가였다. 결혼 전에는 5년 넘게 꾸준히 했고, 아이를 낳은 뒤로 한동안 멀어졌다가 작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빠르고 활발한 움직임보다는 호흡에 집중하고, 멈춤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한국에서 치열한 삶을 살던 나에게는 더욱 필요했다. 요가는 몸을 쓰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다루는 일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단단하게 세우고,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한 달 살기를 결심하며 다짐한 것이 있다면 요가만큼은 놓치지 말자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요가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처음 타보는 화이트 버스에 몸을 싣고 15분쯤 달려 도착한 낯선 곳.
여기서부터는 다시 400미터를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춥기보다는 더운 나라에서의 걷기는 이상하게도 수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땀마저 상쾌하게 느껴질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누가 보면 이미 요가 수련을 마치고 나온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요가원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그동안 보아온 필리핀의 건물들 중에서도 유난히 세련되고, 또 말끔한 외관이었다.
10시 30분에 시작되는 비기너 요가 수업이 열리는 공간은 한쪽 벽이 아예 없는 오픈형 구조였다.
날이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가장 가까운 풍경이 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와 함께 그날의 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 자연을 가리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언젠가는 탁 트인 야외에서 정체되지 않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오롯이 호흡에만 집중하는 요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바람이 이곳에서, 그것도 한 달 살기 5일 차에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이렇게 빨리 행복해도 되나 싶은 마음으로, 그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한 시간 동안 나의 아사나에, 나의 몸짓에만 집중한다. 그 시간 속에서 흘리는 땀이 얼마나 값지고 상쾌한 과정인지를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동작이 버거워질 때마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기만 해도 하늘이 그대로 닿아 있는 공간. 그 사실만으로도 다시 호흡을 이어갈 힘이 생긴다.
이 요가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서비스는 수련이 끝난 뒤 건네받는, 아로마 향이 가득한 쿨 타월이다.
차가운 수건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묻고 다시 한번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면 아로마 향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며 쌓여 있던 기운들을 말끔히 씻어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운동 후에 먹는 밥. 그 맛은 말할 것도 없이, 더없이 꿀맛이다.
오후가 되자, 몸에 남아 있던 찌뿌듯한 피로를 풀기 위해 혼자 지프니에 몸을 싣고 스파숍으로 향했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익숙해져 가는 소음마저도 이제는 이곳의 일상이 되었다.
한 시간의 스파를 마치고 나와 차갑고 달콤한 망고 스무디를 천천히 마신다. 그 짧은 휴식이 하루의 결을 부드럽게 정리해 준다.
그리고 다시 지프니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특별할 것 없는 동선 속에서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흘러가는 하루가 얼마나 멋진 하루인지,
지금의 나는 충분히 멋지게 잘 살고 있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