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세상
디지털 노마드 친구들과 함께 살게됐을 때 시작부터 모든 것이 즐거운 건 아니었다. 처음 3-4일 정도는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하며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 외 거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우스메이트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다. 그러다보니 이 친구들의 하루 업무 시작과 끝을 보게되고, 하루 중 언제 얼만큼 쉬고, 또 요즘의 업무강도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는건 내게 혼란감을 안겨주었고 알게모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보통 직장인들의 일상과는 천지차이였다. 평일에 고정된 업무시간(9 to 6)이 있고 퇴근 후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는 보통 직장인들과는 달리 이 친구들에게 업무시간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각자 스타일에 따라 고정된 업무시간이 있긴 하지만 매일 본인의 컨디션이나 업무에 따라 굉장히 유동적이다) 업무시간 중간에도 본인이 쉬고싶은 만큼 휴식을 취한다. 시간은 자유롭게 쓰되 본인의 deliverable(업무결과?)를 정해진 기한까지 팀원이나 회사에 전달만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전에 시간을 자유롭게 쓴 친구는 그 날 밤에 좀더 오피스에 남아 업무를 했고,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짧게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대신 주말에 업무량을 채웠다.
물론 이런 형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서울에서도 종종 봤지만 소수에 불과했는데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런 부류의 사람들인건 너무나 낯선 경험이었다. 모두가 유연한 근무시간을 가지고 자유롭게 하루 일과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인다는 건 정말이지 내게 큰 혼란이었다. 지금까지 알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라이프 스타일로 살고 있는 친구들을 (어쩌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현실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걸 이미 하고있는 친구들을)보며 신기하고 부러운 동시에 '정말 이렇게 일해도 된다고?'하는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억울함이 차올랐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회사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하루종일 앉아있는다고 모든 시간 일만 하면서 보내는 건 아니니까.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는 주변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히려 집에서 일하니까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졌고 일을 일찍 끝내니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많아졌다고 했다.
하우스메이트 중에는 500만 구독자가 넘는 글로벌 유튜버 친구가 있었다. 처음엔 얘가 누군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미국, 중국, 태국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 친구들이 얘를 팔로우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어느날 이 친구가 걸어가다가 스치듯 내게 했던 말이 잠시 발걸음을 멈춰세운 적이 있다.
"쟤네는 매일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같이 놀자고 하기가 미안해"
내가 뭘 잘못들은 건가 싶어서 되물으려 옆을 돌아봤다가 이 친구를 보고 이내 단념했다. 그냥 "그렇구나" 한 마디 남겼고 그 날 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져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