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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는지 Aug 07. 2022

코로나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

직장인 노마드, 위기에 발빠르게 대처한 사람들

2022년 2월, 방콕에 처음 왔을 때 놀랐던 점은 외국인 비율이 눈에 띄게 높다는 것이었다. 수쿰빗이나 통로 같은 특정 동네를 가면 길거리나 식당, 카페 어디를 가도 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더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해외여행은 커녕 집밖에 잘 안 나오는 줄로만 알았던 터라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면 유럽에 사는 주변 친구들은 이미 2021년 여름즈음부터 길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았고 조금씩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주로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국가들이 일찍부터 국경을 다시 열기 시작했고 여행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외국인 출입국 관련 규제를 완화시키고 호텔이나 여행사들은 전보다 저렴한 패키지상품을 내놓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개인의 이동을 제한하는 비상체제에 상대적으로 덜 순응한(?) 유럽 친구들은 진작부터 이런 혜택들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놀라운 점은 방콕에서 만난 외국인들 중 상당수가 여행객이 아닌 이곳에 사는 거주인들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은 팬데믹 전부터 살던 것이 아니라 한창 코로나가 성행하던 기간에 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방콕에서 알게된 UN기구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 뉴욕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그는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어차피 회사를 출근하지도 않는데 어마무시한 뉴욕 물가를 감당하면서 굳이 그곳에 살 필요가 없었고 평소 여행하고 싶었던 아르헨티나로 거주지를 옮겨 그곳에서 똑같이 원격으로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밖을 활발히 다니지는 못 했지만 마트에서 장을 봐 직접 요리를 해먹고, 집 안을 가꾸고, 낯선 나라에 새로운 단골 식당과 카페가 생기는 등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들은 그에게 여행이 되었다. 뉴욕과 비교하면 굉장히 싼 아르헨티나 물가 덕분에 똑같은 월급을 받고도 저축을 더 많이 하게된 것도 큰 이득이었다. 뉴욕과 아르헨티나 생활을 접고 최근 그는 회사의 방콕지사로 지원하여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방콕생활을 시작했다.


그와 이야기 하는 내내 머릿 속 저편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멈췄고 평소 걸음속도보다 모든 것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에 불안감과 답답함을 느꼈지만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건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사람들은 팬데믹 이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걸음속도 어쩌면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애자일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2019년에 <나는 직장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디지털 노마드의 개념에서 조금 더 나아가 회사를 다니면서 원격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직장인 노마드'의 개념을 설명했다. 이 책을 집어들었던 건 내 업무환경이나 일의 형태가 보통 직장인들과 달라서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기에 내 일의 형태를 어떻게 쉽게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읽었던 책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누구나 IT를 베이스로 한 직업, 대표적으로 개발자를 떠올린다. 물론 내 하우스메이트들 중 개발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 치앙마이에 살게되고 하우스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눌 때 놀란 점은 생각보다 상당수 IT 백그라운드가 아닌 친구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들 중에는 건축가, e-commerce 종사자, 마케터와 같은 이름만 들어도 노마드와는 거리가 먼, 프리랜서가 아닌 보통 직장인들이 많았다(아티스트인 친구들도 많았지만 이들은 직장인은 아니었으므로 예외로 둔다).


이 친구들이야말로 코로나를 기회로 잡은, 직장인 노마드의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로 원격근무가 가능해졌고 태국이 관광객 대상으로 국경을 열기 시작했을 때 주어진 환경의 조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본인들의 일상을 최적의 상태로 설계한 내 하우스메이트들.  


우리들의 집이자 오피스 공간


캐나다 벤쿠버에서 온 건축가 A와 미국 뉴욕의 e-commerce회사에서 고객서비스 관련 팀에서 일하는 D는 앞서 언급한 방콕에서 만난 친구처럼 재택근무가 장기화 되자 태국으로 넘어와 일을 시작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각각 벤쿠버와 뉴욕시각 기준으로 일했기 때문에 보통 낮에는 여행을 하고 밤에는 일을 했다. D의 경우 보통 전화업무가 많기 때문에 시간만 맞고 전화만 가능하다면 어디서든지 일을해도 상관없고 A 역시 그랬다. 이 친구들 뿐만 아니라 하우스메이트들 중에는 북미/중남미/유럽 타임존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오피스는 밤늦게도 항상 불이 켜져있다. Night shift로 일하는 친구들 말로는 남들 놀거나 자는 시간에 일한다는 것이 때론 외롭고 슬프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본인 말고도 저편에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 한 켠에 묘한 동질감과 함께 서로 의지가 된다고 한다.  


평일에도 밖에서 놀다가 밤늦게 들어올 때면 늘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는 A와 D와 마주쳤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 모를 죄책감과 함께 자극을 받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D가 나에게 우리가 퇴근하고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가거나 놀러갈 때마다 너무 부러워서 자기는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퇴근하고 저녀먹으러 나갈 때마다 혼자 조용히 거실에서 재밌게 다녀오라고 손 흔들었던 D. 이 친구는 떠나기 전 날까지 함께 치앙마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찬양을 할 정도로 이 곳을 좋아했지만 현실적인 것들을 고려하여 한 달 뒤 뉴욕과 타임존이 비슷한 중미로 떠나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온 마케터 A는 태국 남부부터 시작해 수 개월째 노마드로 일을 하고 있다. 푸켓에서 3개월간 바다를 즐겼고 6월부터는 산을 즐기기 위해 치앙마이로 넘어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통유리창 너머로 있는 오피스 공간을 보면 늘 아침에 제일 일찍 나와서 일하고 있는 고정멤버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A였다. 모험심이 강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이 친구는 스쿠터나 자전거로 혼자 멀리까지 드라이브를 하는 것을 즐겼는데 누구보다 일도 여행도 열심히하는 똑부러지는 친구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 주의의 표본이다.


(좌) 퇴근하고 중국인 친구 E가 맛있는 중국식당에 데려가 줘서 배터지게 먹은 날. (우) 퇴근 후 마당에서 하우스메이트들과 했던 바베큐 파티.


사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직장인 노마드가 전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 회사 본부는 미국 워싱턴D.C 있고 다른 팀원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원격으로 일하는 것에 훨씬 익숙했었다. 물론 많은 회사들이 해외 지사를  경우가 많지만 가장  다른 점은 보통 한국 회사에서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팀이 되어 좀더 끈끈하게 일하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팀원이라면   위치(국가) 달라도 훨씬  가깝게 일했다. 같은 국가에 있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업무를 하는 것에 따라 팀원이 결정됐고 한국보다 해외에 있는 팀원들과  가깝게 했다. , 물리적 단위로 팀을 나누기보다 업무단위로 팀을 나누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해서 일을 하느냐가 상대적으로  중요했다. 대부분의 업무가 해외에 있는 팀원들과 이메일이나 화상전화를 통해 진행됐기 때문에 굳이 오피스에서   필요가 어서 사실 전부터 직장인 노마드의 라이프를 경험하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직장인 노마드 트렌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코로나는 이 흐름의 속도를 훨씬 가속화 시켰다. 디지털 노마드가 더이상 IT업계 종사자나 프리랜서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직장인을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고 이들은 자유롭게 일하는 장소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치앙마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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