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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는지 Aug 21. 2022

코로나 덕분에 새로운 직업의 세계로

여행하며 돈버는 방법

co-living space 에 처음 입주한 날 가장 처음 만난 건 대만커플 D와 A였다. 토요일 밤늦게 체크인한 터라 스텝이 없었고 혼자서 셀프 체크인을 한 후 건물들을 돌아다니며 당분간 살 곳을 구경하고 있던 중에 마주쳤다. A와 D는 커플이었고 주말 밤이라 거실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첫 인사를 나눴고 D는 내게 본인을 1인 미디어라고 소개했다. 


마케팅 회사를 다니던 대만친구 D는 남자친구 A와 오랜시간 꿈꿔왔던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2019년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시작됐고 꼬박 2년이라는 시간동안 꼼짝없이 대만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이미 여행을 떠난 후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야하는 상황은 아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그녀에게 코로나는 절망 그 자체였다. 그녀는 함께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 오랜시간 남자친구를 설득했고 그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남자친구 역시 일을 그만 둔 아찔한 상황이었다). 30대 초반인 그녀가 여행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보통 용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D의 오랜 인내와 용기를 코로나는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여행도 여행이지만 백수가 된 그녀는 당장 먹고살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좌절했던 D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본인의 취미와 마케팅 회사에서 익혔던 카피라이팅 실력을 살려 1인 미디어 즉, 프리랜서가 되었다. 주 고객 중 하나는 일본 브랜드 유니클로였다. 그녀는 유니클로의 상품이나 프로젝트를 중국과 대만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글을 쓰고 원고료를 받았다. 그녀가 여기 co-living space에 살게 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차츰 해외여행이 가능해지기 시작할 타이밍에 운좋게 우리가 살고 있는 co-living space의 홍콩 대표 J와 연이 닿았고 D는 SNS에 중국, 홍콩, 대만을 대상으로 이 곳을 마케팅하는 홍보컨텐츠를 만드는 조건으로 큰 할인혜택을 받으며 이곳에 살게됐다. D는 이곳에 사는 동안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어떻게 이곳을 알게된 경로나, 이곳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인지 등 이곳에서 일하는 스텝 친구들이나 대표 J보다 우리들에게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했다. 


홍보 컨텐츠를 써주고 여행하면서 잘 곳과 일할 곳 모두를 얻은 셈이다. 장기여행을 하는 그녀에게 여행도 하면서 수입을 챙기는 꽤나 좋은 딜처럼 보였다. 그녀와 그녀 남자친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치앙마이 이곳 저곳을 여행하고 때로는 저멀리 옆동네까지 다녀와서 어디 음식점이 맛있는지, 어디 뷰가 좋은지 등 여행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지 않는 날은 종종 오피스에 앉아 글을 쓰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는 D와 A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남자친구 A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A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행을 여기 저기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는 좀 신기한 것 같아. 특히 우리가 사는 이 공간말이야. 나와 D는 이런 곳을 처음 와봐서.. 여행을 왔는데 우리빼고 다들 직장인인게 너무 신기해."


치앙마이에 온 주된 목적이 여행에 있는 D와 A에게는 co-working space에서 산다는게 신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태국에서 여행도 하긴 하지만 완전한 여행자가 아니고 각자 자기네 나라에 있는 회사생활도 원격으로 하고 있는 이중생활자(?)들이니까. 


이야기 하다보니 어쩌면 이 친구들에게 이 공간에 함께 사는게 지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백팩여행의 꽃 중 하나는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저녁 때 숙소에 돌아와 다른 여행자들이랑 여행정보를 공유하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밤새 수다떠는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여행객들이 아니니 같이 노는 시간도 제한적이고 만나면 여행이야기 보다는 각자 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모두 장기체류자이다보니 이곳에 살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활정보(비자, 운전면허와 같은)를 공유하거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모여있다 보니 일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히 빠지지 않고 워낙 글로벌하게 모여있다 보니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각자 나라에서는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는게 보통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다.

 

혹시나 해서 D와 A에게 여기 사는게 혹시 너네한테는 지루한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전혀 아니고 오히려 더 재밌다고 답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서 수다를 떠는게 이 친구들에게는 여행이라고. 특히 D는 호기심이 가득한 친구인데 어디서간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세우고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대화가 있으면 언제나 그것을 소재로 블로그에 글을 썼다. 코로나로 인해 비록 여행은 2년 뒤로 미뤄지긴지만 덕분에 그녀는 1인 미디어로 전향하여 여행하며 컨텐츠를 만들고 수익을 내는 사람이 되었다. 역시 우리에게 어떤 위기가 닥치건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느냐가 결정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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