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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는지 Dec 02. 2022

우크라이나 전쟁과 디지털노마드

전쟁 앞에 평범한 직업인이 가져야할 자세

러시아의 계속되는 미사일 공격. 폐허가 된 건물.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연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뒷모습. 지난 2월부터 쏟아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도하는 기사를 보며 심지어는 실시간으로 폭탄이 터지는 키이우 한복판을 생중계하는 영상을 보며 우리 모두 분노했고 슬퍼했다. 어느덧 해는 넘어가는데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고 더이상 피로감에 섣불리러-우전쟁 기사를 클릭하기가 망설여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가 그렇다..허허)


러-우 전쟁의 조금 다른 부분을 조명해보면 어떨까?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떠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나같이 평범한 우크라이나 청년들의 이야기같은 것 말이다. 바로 내 친구들의 이야기다.


내 주변 디지털노마드 친구들 중 우크라이나 친구들은 총 3명. 나와 같은 오피스에서 일하는 R과 M은 개발자 친구들이고 방콕에서 만났던 D는 아시아 지역 내 병원들과 업무협약을 맺어 줄기세포 관련한 의료기술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맨이다. 모두 전쟁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후로 나라를 빠져나온 친구들이다. 그 중에서도 R은 군복무를 했던 터라 주어진 기간 내에 우크라이나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강제징용으로 전쟁에 참여해야했다. 그는 고민끝에 결국 전쟁 이틀 전 출국했다.


이 친구들은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와 각자 스위스, 포르투갈, 노르웨이를 거쳐왔다. 상대적으로 난민제도가 잘 갖춰져있는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난민비자를 취득해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얻고 지냈지만 안정적인 주거문제, 세금 문제와 같은 여러가지 상황들이 녹록치 않았고 지금은 태국 치앙마이에 정착하여 난민이 아닌 평범한 디지털노마드로 살고 있다. 즉, 다른 유럽국가들의 난민제도가 딱히 그들을 보호하지 못 했고 난민지위를 이용하여 유럽에 있는 것보다 태국에서 디지털노마드로서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이들에게 이득이었다.


R은 원래 다니던 IT회사를 그대로 다니며 원격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M은 처음 난민비자를 받고 스위스에서 지내는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력서를 150군데도 더 넣었다. M이 말하길 그래도 본인은 개발자였고 다른 유럽국가를 기반으로한 우크라이나 IT회사가 많았기에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지 스위스에는 1년 넘게 일자리를 못 구하는 세계 각 지역에서 모인 난민들이 너무 많이 봤다고 한다. 전쟁은 그런거다. 단순히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하는 파괴력이 아니라 겉은 멀쩡해 보여도 한 개인의 일상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틀어 놓는 것.


아무리 생중계로 보여준다 한들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미사일이 떨어지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들은 솔직히 너무 영화같이 먼 이야기처럼 느껴져 전쟁이 무엇인지 피부로 체감하긴 힘들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들을 통해 어렴풋이 아, 전쟁은 이런거구나 하고 대략 짐작해 본다. 본인 선택으로 자국을 떠났으나 사실은 자의가 아닌 상황에서 보금자리를 떠나 당장 새롭게 살 집을 구해야 하는 것.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아주 복잡한 주거, 세금, 노동 관련 법과 제도들을 공부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해당되고 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내가 하루 아침에 멀쩡히 잘 다니던 일자리를 잃는 것. 새로운 구직시장에 홀연히 던져지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상황 속에서 나를 끼워맞춰야 하는 것.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국가가 인간으로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도록 최소한의 기능을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전쟁 앞에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은 말해 무엇하랴. 국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사회시스템이 마비된 마당에 다니던 회사가 직원의 안위를 보장해 줄리 만무하지 않나. 나는 이 친구들을 통해 전쟁을 바라보고 다시금 배웠다. 위기상황 속에서 개인을 구제할 수 있는건 단 하나, 바로 본인 자신뿐이라는 것. 조직의 일원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자본주의 시장에 던져져서 시공간 제약없이 본인의 능력을 활용하여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잘 갖춰진 능력과 역량으로 무장한 나 자신만이 최고의 무기이자 방어책이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이 친구들이 마주했던 것들과 비슷한 상황을 코로나를 통해 겪어봤다. 내 주변에도 코로나로 인해 실직한 사람이 있었고 장기화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두고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이를 책임지는 사람도 시스템도 없었다.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전쟁이나 코로나와 같은 위기가 또다시 어떤 시기에 어떤 형태로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같이 평범한 직업인들 (혹은 직장인들)은 어떤 자세를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등산하다가 나무에서 열매 따서 먹는 초자연주의적 삶 / 한국어 켜놓고 유창하게 읽는 척. 나도 이 친구들 옆에서 일하는거 보다가 우즈베키스탄어 아는척하며 내 멋대로 잘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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