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 진급 비선 경험담
나는 고무줄 몸무게를 가지고 있다. 성인 여성을 기준으로 평균 이상의 키를 가지고 있지만 체격도 있는 편이라 요즘 어린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소위 '뼈마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 그에 근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고작 3년이 안 되게 유지되고는 끝이었다. 그렇게 인생 대부분을 정상 체중과 과체중을 오가며 살아가다 임신과 출산을 기점으로 만삭 때는 0.1톤이 조금 안 되는 몸무게를 갱신하기도 했다. 이후 노력의 노력을 거듭하여 현재 40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10년 전 소위 나의 리즈시절이라 해도 좋을 만한 시절의 몸무게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이로써 꽤 나 자신감이 충전된 상태로 가족들과 동남아 여행을 떠났고, 여행 중 진급 결과가 발표되었다. 수영복이든 바캉스룩이든 만족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던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도 툭'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근무지로 복귀하는 길에 진급 명단에 이름이 있었던 가까운 지인들에게 축하 전화를 돌렸다. 강릉과 대전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와 통화할 때는 나의 낙방 소식에 행여라도 축하 인사가 무색해질까 봐 여행 이야기로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랑 강릉에서 일할 때만큼 살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하자 선배가 오오, 귀네스 팰트로, 다시 보는 거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 인연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농담에 향수와 안도감 이 밀려온다.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내용으로 채워지는 수다가 담고 있는 진심을 알아주는 센스 있는 선배라서 예전부터 좋아했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나의 리즈시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 10년 전쯤을 떠올렸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기념으로 시작했던 다이어트가 성공하여 평소보다 가벼운 몸으로 아프리카의 남수단에 파병을 갔고, 내외적으로 모두 만족감이 깊었던 때였다.
무엇보다 파병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험과 확장된 세계관으로 국가를 넘어 인류라는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이라는 훈장을 마음 깊이 새기던 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에도 인생의 한 때에 불과한 뜨거움을 다룰 줄 몰랐던 미숙함과 방향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그마저도 젊음의 구성 요소였던 건 마냥 모든 게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향수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그리움이 과거라는 시간에 자꾸만 필터를 씌우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유명인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좋아요' 수를 얻기도 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꽃이 만개하듯 활짝 핀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며, 그 시간은 순간이지만 모두에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안도하는 듯하다. 이렇게 리즈시절이라는 신조어는 우리에게 내재된 노스탤지어적 감성을 자극한다.
더 이상 나는 그때처럼 젊지 않다. 아무리 나이는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나이 앞자리에 공식적으로 숫자 4'를 달고 나니 젊음을 주장해야 할 때 조금은 망설여진다. 누군가에 비해 젊을 수는 있어도 막 젊음을 대표하는 시기는 지난 듯 하다. 이 시대에서 어른으로서의 몫을 어떤 모양으로든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조금 더 늘었다. 딱히 나 자신도 대단히 잘 살지는 못하면서 우리보다 더 어려 운 세상을 감내해야 하는 어린 세대들을 보며 무용하게만 들리는 미안함이라는 감정도 더 자주 느낀다.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모습도 달라진 점 중 하나이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잠식되어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줄었고, 외부의 명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이전보다 더 잘하게 되었다. 이런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시간들은 대부분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을 때였다.
첫 번째 진급 차수에서 떨어졌을 때 가족들 곁에 남을지 또 다른 도전을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아빠, 엄마를 모두 군인으로 둔 아들의 다섯 살 인생에서 내 손으로 직접 아이를 키운 시간이 2년도 채 되지 않는 내가 또 이별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방 지역으로 이동을 결정했고, 그렇게 올라온 이곳 강원도 인제가 나의 근무지가 되었다.
이곳은 가족들이 있는 도시보다 불빛이 더 적기 때문일까, 밤하늘의 달이 유난히도 더 밝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달이 너무 밝게 빛나서 녹아 흘러내릴 것만 같은 경외로운 풍경에 넋이 나가기도 했다. 인제로 가까워질수록 가족에게서 멀어질수록 달은 점점 밝아진다. 그런 달을 보며 저 달의 리즈시절은 언제인지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음력 팔월의 보름쯤일까, 아 니면 신의 손톱이라 불리며 얇고 매끄러운 자태를 뽐내는 초승달이나 그믐달쯤일까?
동남아 여행 중 낮에 모습을 드러낸 달을 발견한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낮인데 저기 달이 있어. 그런데 색깔이 조금 달라. 저 달은 흰색이야!"
"맞아, 밤에 보는 달이랑 낮에 보는 달이 다르지?"
"응, 근데 엄마, 밤에 달도 모양이 계속 바뀌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그래."
"그러네. 달은 색이나 모양이 달라져도 늘 같은 달이야. 그런데 때에 따라서 우리 눈에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고. 참 신기하지?"
그때 사람의 인생이 달과 참 닮았다 생각했다. 본체는 바뀌지 않는데 그 모습만 바뀌는 달. 누군가에게 보이는 모습은 시절에 따라 차거나 기울기도 하고, 밝거나 어둡기도 하며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실제의 달은 작아지거나 커 지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모습이 때로는 상현달 같기도 하고, 초승달 같기도 하며 어떤 때는 보름달처럼 빛나기도 하고, 한낮에는 희거나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안다. 그런 달에게도 우리에게도 리즈시절이 언제인지 가늠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의 눈에 한 때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 그것은 실제와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는 모양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지금 나의 때는 누가 보아도 그 두 눈을 가득 채울만한 보름달의 환한 빛을 내는 시기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햇빛이 가득한 시간, 찾아내기도 힘든 곳에 뜬 낮달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녹록하지만은 않았던 지나온 시간 속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더라도 우리 모두의 삶은 매 순간 존재함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가슴깊이 깨달았다. 한결 단단한 마음으로 인생을 마주 한 지금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리즈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