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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구려병

고장 난 마음과 대화하기

by 갓 구운 빵

지난주 심상치 않은 어깨 통증으로 수영을 한 주 쉬었더니 모든 삶의 패턴이 망가진 기분이다. 딱히 내 삶이 잘못되어 있다는 지표도 없는데 수입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은 재정 현황, 강원도 겨울의 혹독한 추위, 세포 단위로 노화가 느껴지는 상황과 도피한 어떤 곳에서도 천국은 없다는 마흔 넘은 지금으로서의 자각이 나를 계속 지치게 만든다.

비교하자면 끝도 없으며 비교의 잣대를 아무 데나 내미는 것은 폭력적이며 불공정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의 삶에 드리워진 비교에서 비롯되는 생각을 멈출 길이 없다. 이 세상이 내게 가장 잘 못한 것은 비교를 통해서 삶의 기준을 만들게 나도 모르게 학습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상 탓을 좀 하고 나니 마음에 조금 후련하다.

난 요즘 내 인생 구려병에 걸렸다.

내게는 자주 대화를 나누는 원격 친구들이 있다. 모두 흩어져 사는 바람에 1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데 이상하게 자꾸 내밀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게 하는 친구들. 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소싯적 내 학부시절 성적 이야기를 꺼내주는 내 친구에게 내가 이렇게 답했다.

"나 내세울 게 저게 끝인 듯.

요즘 내 인생 내 마음에 안 드는 중"

그러자 내 친구가 답한다.

"이거 득음 이전에 오는 내 노래 구려병 단계라고 누가 말해줌"

이에 질세라 내가 답한다.

''내 수영 구려

내 헬스 구려

내 독서 구려

내 인생 구려

나란 인간 구려 상태"


정말 목이 마른 누군가에게 내민 물 한잔처럼 달콤하고 필요한 위로의 말.

분투할 힘조차 없어 그냥 쓰러져 있는 누군가에게 가볍고 비유적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친구의 말에 출근 전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붙잡고 씨름하는 나의 마음에 이 글을 선물한다.

내 인생 구려 병에 걸린 모든 이들이여, 득음 전 신호에 너무 오랫동안 무너져 있지 말고 오늘 딱 한 걸음만 내디뎌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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