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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 대하여

나의 속도로, 나의 태도로

by 갓 구운 빵

1. 느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힘이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오늘 아침, 오랜만에 수영장에 다녀왔다. 1년을 넘게 배웠지만 여전히 한 번에 20미터 가는 것도 힘겹고, 40분을 채워도 600미터가 고작이다. 누군가에게는 웜업 정도의 그 거리가 나에게는 하루치 수영 운동의 전부일 때가 많다. 조깅도 마찬가지다. 킬로당 10분이 넘게 천천히 달린다.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살살 달래가면서 뛰는 것이다. 요즘은 다행히도‘ 슬로 조깅'이라는 것이 유행해서 조금은 덜 민망하지만 내 곁을 쌩하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된다. 숫자만 보면 너무 느린 걸 알지만, 내 호흡과 나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 그 시간이 나를 숨 쉬게 한다.


나를 속도로 평가한다면, 나는 늘 뒤처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속도가 아니라 태도로 나를 설명하고 싶다.


2. 나는 달리고 있고,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20년째 군에 몸담고 있다. 올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진급 발표를 앞두고 있다. 진급은 늘 뼈아픈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다. 결과가 어떻든, 어떤 방향으로든 그 시간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결과를 두 번 마주한 나는 "실패"와 "좌절"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실패는 결과, 좌절은 내 감정. 하지만 문득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내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릴 적부터 성적이나 대학 입시 등과 같은 단일화된 성과 지표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을 평가하고 나를 재단하며 살아온 삶을 벗어나기란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실패를 마주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속상해하며 내가 나에게 던지는 말들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법한 말들이다. '넌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능력이 부족하며 실패했단다.' 이런 가혹한 말을 어떤 사람이 남에게 쉽게 내뱉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남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자꾸 그렇게 말한다.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내 마음이 아주 날카롭다.


하지만 나는 오늘, 조용히 선언하고 싶다.

나는 나의 페이스대로 달리고 있고,

그것을 멈추지 않음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3. 나를 만드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태도다


나의 레이스는 내가 멈추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으로서, 직업인으로서도 나는 여전히 ‘최고의 성과’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 지향이 나의 부족함을 외면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주하고 직면하되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는 방식이기를 희망한다.


매일 나 자신에게 묻기.

“오늘도 나답게, 끝까지 최선을 다 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이 “예”라면,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누군가의 가치를 쉽게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렇게 나 자신도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은, 결과만 보여주는 성과가 아니라 한결같이 그런 태도로 살아온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태도로 나의 레이스를 끝까지 이어가고 싶다. 나의 속도, 나의 자세, 그리고 나의 가치.

모두가 지는 존중받아야 할 마땅함을 나 자신이라고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느리게 걷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한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나답게 나의 경기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남들보다 느리고 서툰 수영과 달리기와 글쓰기, 책 읽기로 - 내가 좋아하는 시간들로 내 인생을 채울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인생이라는 길 위에 있는 나를 믿고, 그걸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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