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연락처에서 한 사람 이름을 클릭했다. 전화를 받을 사람은 전화기를 멀리 두었던 모양이다. 벨이 예닐곱 번 울린 뒤에 약간 헐떡이는 숨소리에 묻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 내 전화기 저장 번호가 다 날아갔어요."
"타덕아, 난데 모르겠나?"
잠깐이지만 아직 가쁜 숨소리가 서너 차례 더 느껴졌다.
다시 폰의 수화기 구멍으로 목청이 울렸다.
" 어~ 우기구나"
초등학교 졸업 후 헤어져 30년 이상 못 보다가 몇 년 전 동기 모임에서 만났던 코흘리개 친구다. 1년에 한 두 번 얼굴 볼 수 있는 사이일 뿐인데, 등록도 안 된 전화번호를 보고 이름 석 자를 척 댔다. 특별히 일이 있어서 한 전화는 아니었다. 그 친구가 사는 곳이라고 들었던 동네를 지나다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이름 위에 손가락이 얹혔던 것이다.
세상 참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비대면, 온 택트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당신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 안부를 하는가? 내가 그 사람한테 특별한 용무 없이 순수하게 안부를 물을 때는 얼마나 되는가?
인지심리학자로 유명한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꽤 알고 지내지만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연락해서 뭘 빌리거나 부탁할 일이 있거나 좀 긴 용건이 있고, 그것을 바로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마음에 없는 인사를 한다. '잘 지내는지, 애들은 잘 커고,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영혼이 담기지 않는 안부다. 그 안부가 길어질수록 용건은 클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용건과 안부를 묶어서 일을 볼 때가 많다. 우리는 이걸 잘 알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나한테 오랜만에 전화 걸려오는 친구를 경계한다. 더구나 안부가 길어지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진짜 가까운 사이에서는 두 가지를 엮어서 말하지 않는다. 하나만 얘기하고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용건이 있을 때는 용건만 얘기하고. 더 중요한 건 용건이 없어도 안부를 물어본다."
나를 중심으로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는 사람도 친한 사람, 덜 친한 사람으로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구별하지 않고 따뜻하게 안부 나누는 관계를 가지면 어떨까. 덜 친한 경우에도 생각이 날 때 평소에 수인사라도 건네 놓으면 좋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속물 근성은 있기 마련이다. 용무가 있을 때 덜 미안하고 부담도 덜하게 전화기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특별한 용무가 없더라도 평소에 마음을 움직여서 전화기를 들 수 있는 감성을 쌓아가면 좋지 않겠는가. 잘못하면 인공 지능에 영혼까지 넘겨 줄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AI에 대체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하고의 친밀도나 이해 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안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사람한테는 사람 내음이 물씬 난다.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