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전전긍긍의 실험실] 서로의 눈이 향하는 방향

서로를 향한 시선에 대한...

by 상처입은 치유자
딸깍. 나의 실험실에 불을 켜 본다. 실험실 책상에 앉아 우리집 저녁풍경을 들여다본다. 천천히 연필을 깎고 잘 지워지는 지우개를 서랍에서 꺼낸다. 정교하게 그리고 싶어 자도 준비한다. 자.. 이제 실험 시작이다.


1. 우리집 저녁 풍경

저녁 식사 시간. 아이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펼쳐 자신의 이야기로 식탁을 점령하고 싶어 한다.


엄마와 서먹한 관계가 지속될 때, 아이는 아빠를 전략적 우방국으로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본능적으로. 아이는 연신 "아빠~ 그거 알아요?"라며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꺼내어 매력을 발산한다.


"응...", "오!", "허허허.."

이 느낌. 남편은 지금 기계적 반응을 하고 있다. 눈은 밥을 향해있지만 다른 것을 보고 있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 아빠처럼 머릿속은 축구경기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축구경기 관람 중에 다른 말이 들어올 리가 있나.


"오늘 내가 마트에 갔는데, 이게 보이는 거야. 강냉이를 좋아하니까 내가 사게 되더라고."

서윗한 남편. 남편은 매력발산 중인 아이가 아닌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적잖이 당황한다. 녀석은 아빠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리도 노력했는데, 이럴 수가! 옆에서 그저 웃고 있던 엄마에게 말을 건넨것이다.


"오~진짜? 오빠 역시.. 진짜 땡큐. 우리 같이 먹자!"

'우방국을 만드는 것은 조급함을 보이면 안 되는 것이란다!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지.'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외교란 자고로 그런 것.


아이 쪽으로 한껏 옮겨놓은 나의 동공이 한순간을 포착한다. 그것은 바로 미소가 사라진 아이의 모습.


말로 회담 테이블을 장악하려던 전략이 아이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쩌면, 실패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아이는 나에게 침묵을 요구했다. '좋아! 존중한다'는 의미로 나는 아이의 눈을 최대한 피해 준다. 혹시나 예민한 사춘기 아이가 나의 말과 시선을 '간섭'으로 여길까 봐.


아이의 시선이 이마로 느껴졌다. 하지만 눈 마주치자 아이가 이내 자기 시선을 거두어 버린다.


나는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가 내 눈빛을 직접 받아 들진 않는다. 눈꼬리로 잠시 옮겨온 아이의 동공이 나의 시선을 정찰하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2. 의문과 가설

1) 엄마에게 향한 시선을 1~2초 있다가 거둔 이유가 무엇일까?

-> 직접 눈을 마주치는 것이 아이에게 부담이지만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싶다.


2) 정작 내가 쳐다볼 때는 왜 눈을 마주치지 않는가?

-> 엄마를 쳐다보지 않음으로 써 나는 괜찮아!!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3) 어릴 때 엄마를 굳이 찾아 쳐다보던 그 눈빛은 어디로 간 것일까?

-> 이젠 엄마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겠다는 결연한 의지이다.


3. 결론


서로를 향하던 시선의 방향은 계속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낯섦'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이는 옹알이와 울음, 엄마는 한국말인데 이건 뭐 외계인과 대화도 이것보다는 쉽겠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전해줄 것만 같은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렇게 십 년 넘게 눈빛에 욕망을 담아 교환하며 서로를 알아가느라 분주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경계를 잃고 마치 하나인 듯 지냈다.


점차 넓어지는 아이의 시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아이는 자기의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여전히 서로의 눈빛으로 사랑을 확인하던 습관이 아직 남아있었던 시절이었다.


불안했다. 왜 다른 곳을 보는거야!! 서로의 길을 알아가며 분리하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다. 이것을 나는 사춘기라고 하고 싶다.


그 아픔의 시간이 주는 선물은 아마도 아이와 엄마가 자기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일 것이다. 엄마가 눈빛이라는 그림자를 아이에게서 거두어 엄마 본인에게 가져온다. 엄마와 아이는 자기의 길을 간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길 위에 서 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서로만을 향해 있지는 않다. 자신의 길 위에 있다.


4. 나를 위한 위로

지금 현재, 아이는 나에게 침묵을 원하고, 서로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내가 눈을 마주치면 아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나의 침묵 속에 있는 헤어짐의 슬픔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나의 눈빛을 거둔다.


어쩌면 내 눈빛안에 있는 나의 미래에 대한 설렘을 들킬까봐 일수도 있겠다. 아이가 서운해 할 까봐..뭐 아님 말고.


엄마의 눈빛이라는 그림자를 거두면, 아이는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사랑하기에 탐색했던 눈빛이 어느 순간 감시로 느껴지는 오늘의 상황이 너무 슬프지만, 그 눈빛으로 나는 나를 비추기로 했다. 그 무엇보다 환하게.


5. 허탈함을 채우는 오늘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진리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서로를 멈추게 하는 밧줄같은 '선'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여전히 탯줄처럼 이어진 이 시선을 끊는 것이 힘들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아이가 이 밧줄에서 벗어나야 더 크게 된다는 것을.


실험은 여기까지이다. 오늘의 허탈함은 이 결론으로 채워진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Ms. 전전긍긍의 실험실(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