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미안하게 됐네.
어깨를 툭툭 들썩이고 코 한쪽을 한껏 찡긋한다. 귀여운 아기 사자가 사냥 놀이 하며 으르렁 하는 것 같다. 이젠 눈을 최대한 치켜뜨고 노려보는 것으로 자세는 준비완료.
이제 말을 쏟아낼 차례다. 징조가 보인다.
"엄마는 엄마 자격이 없어.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 안 돼!!"
"이 집에 태어난 게 난 너무 재수가 없어."
"그냥 죽고싶어"
누군가는 이 날것의 말이 불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제할 수 없다. 이건 내 죄책감의 증거라서.
"신은 정말 못됐어. 왜 나를 이 집에 보낸 거야."
아기 사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빨과 발톱을 보인다. 하수다. 수를 이렇게 다 보여주면, 나는 땡큐지.
이때 나는 일단 몸에 힘을 뺀다. 나도 같이 힘을 주면 큰일 난다. 사실 우리는 성격이 비슷하다. 이제 김을 빼기 위한 마음 자세와 전략을 짠다. 혹시 취권이라는 무술의 전략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취한 척 부드럽게 모든 공격을 피하는 고수의 전략. 요이~~ 땅!
"그니까. 엄마 자격이 없어서 자격 좀 갖추려고 너에게 물어보는 거잖아 아~"
미안하게 됐다. 엄마는 자격을 갖추어가는 과정에 있다.
"엄만 너무 좋은데. 엄만 재수가 좋네.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애가 와서"
"어! 그건 위험한데. 엄마는 이걸 알릴 의무가 있어. 학교와 국가에. 엄마의 의무야"
이 말은 나와 아이의 오랜 교류와 내가 외부의 도움으로, 특히 상담과정에서, 대응한 것이다.
"엄만 신에게 절할 건데. 우리 집에 보내줘서."
방에서 나가란다. 난 안 나가고 버틴다. 왜인지 쫓아내질 않는다. 침대에 눕는다. 쫓아간다. 왜 따라오냐고 하면서도 내가 안아 주면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귀에 속삭인다.
'우리 아기, 엄마가 자격이 아직은 부족해서 인간이어서 실수를 많이 했어. 그래서 우리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그 힘들었던 거 다 내보내. 엄마가 만회할 거야. 하지만 엄마도 상처를 받아.'
아이가 팔을 뻗어 나를 안아준다.
이건 뼈 아픈 나의 고백이다. 나는 죽음으로 아이를 불안하게 했다. 아이를 통제할 목적으로 죽음을 언급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엄마 이렇게 힘들게 하면 아파서 일찍 죽어.'
'이렇게 늦게까지 울면 엄마 내일 출근하다가 졸아서 사고 나서 큰일 나.'
'이게 마지막 모습일 수 있는데 우리 웃으며 보내야지.'
나는 아이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말은 아이의 행동을 바꾸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아이는 나에게서 그 방법을 학습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아이가 죽음을 이야기했을 때 자살예방 매뉴얼을 참고했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보호자의 불안으로 아이에게 반응하기보다는 꼭 매뉴얼대로 이성적으로 아이의 죽음을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나 아이가 구체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계획하고 있다면, 보호자는 이것을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고지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 후 아이의 반응과 평소 행동을 보고 나는 알았다. 이것은 협박이고 그 협박은, 내 말의 변주일 뿐이라는 것을.
이 말들이 얼마나 아이에게 불안했을까. 아이는 과거의 나처럼 불안으로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는 나의 모습이었다. 아프다. 심장이 찌릿하고 아프다. 작디작은 아이가 그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다 내보내라. 여기 엄마 앞에서. 엄마가 다 맞을게. 만회할게. 근데.. 조금 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