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겁고 차가운 가면 속에
"네에~네! 네! 네! 네!"
"***을 부르면?" 하고 말하면 고작 15개월을 산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온 유행어 같은 거다. 그저 반응이었을지도 모를 그 소리를. 우리 부부는 아이의 그 대답을 좋아했다. "네!"라고 말하는 아이는 나에게 육아를 잘하는 유능한 엄마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다. 깊고 단단하게.
행여나 튀어나온 '아니야!' 는 불안으로 다가왔다. 나의 완벽한 시나리오에 그런 대사는 없었다. 그 대사를 빨간펜으로 지웠다. 아이 앞에서 잔인하게.
그렇게 혹독한 첨삭 속에 아이는 아마도 가면을 만들었을 것이다. 중국의 전통 가면극 변검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면을 써야 했을 것이고. 그것도 청중인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순식간에 말이다.
그 순간에 담긴 아이의 고통을 모른 채 나는 그저 즐겼다. 나는 유능한 엄마다. 내가 보급판 오은영이다.
내가 원하는 가면이 나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실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시 꺼내드는 빨간펜. 첨삭이다. 그것이 실수가 아닌 아이의 진짜 모습인 줄 모르는 무지한 엄마다. 그렇게 아이는 첨삭의 날카로운 획을 고스란히 감내한다. 아프다.
아이가 나에게 말을 했다.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나의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다. 그 신호를 첨삭해야 한다.
"엄마가 도와줄게. 하루에 하나씩 하면 되는 거야~"
돕긴 개뿔. 첨삭이나 할 거면서.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다. 아휴.
아이가 느꼈을 그 벽을 지금 내가 느낀다. 답답하다. 나는 불안했고 그때마다 펜을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펜으로 첨삭하는 나와 그때 엄마의 미소 짓는 표정이 사랑이라 착각했던 우리였다. 아이가 쓴 가면의 두께만큼이나 나의 펜은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펜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첨삭할 수 있는 공간을 아이에게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 날. 그래. 그건 짐승의 울음이었다. 그날. 아이의 가면에 더 이상 빨간펜을 들이댈 수 없었다. 공간이 없어서. 그래, 그래서였다. 더 이상 첨삭을 받을 수 없는 아이는 고통의 울음을 토해낸 것이다. 살기 위해.
그래서 아이의 울음은 동물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살고자 하는 본능밖에 없는 그 울음은 나를 멈춰 세웠다. 빨간펜을 들고 있는 나를.
그 펜을 놓겠다고 다짐했을 때. 나는 펜을 움켜쥐는 대신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꼭 껴안기로 하고 아이의 고통과 공명했다. 나의 펜이 썼던 모든 획은 나에게 돌아왔다. 세월의 크기만큼 더 날카롭고 잔혹하게 말이다. 아이의 말과 행동 그리고 눈빛에 서린 그 고통을 겪어 내기로 했다.
너무 아파서 가슴이 아려왔고.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의 고통을 쏟아 내자 내가 한 짓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울었는지 보았다면 나도 짐승 같았을 거다.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던진 첨삭을 지우고 말을 치우고 있다. 나는 지금 청소 중이라 엄청 힘들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나를 보고 웃어주는 시간이 늘었다.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부모님이 있다면 나를 보라. 지금 내가 얼마나 개고생 하는지.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가면을 썼던 아이는 어색하고 서툰 움직임으로 하나씩 자신의 가면을 떼어내고 있다. 오랜 시간 써왔던 거라 뭐가 가면이고 아닌지 우당탕탕 하면서 말이다. 가끔은 본인인데 가면인 줄 알고 버렸다가 멍청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사준 옷은 절대 안 입는다고 기부했다가 한 두 달 후에 다시 사달라고 한다던지, 밴드부에 가입을 말리는 엄마 말을 뒤로 하고 가입했다가 대차게 후회한다던지 뭐. 그럴 수 있지. 헷갈릴 수 있지. 그것 또한 너의 존재다. 존중한다.
이젠 나도 내 존재를 찾으러 오늘을 산다.
오늘 저녁은 뭐 먹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