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으로 극렬히 힘든 시기를 겪었다. 부모님과 다시 펜션 사업을 개시하게 되었고, 옆집에 새언니가 이사를 왔다. 두 가지 큰 변화가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자신도 있었지만, 당면한 현실은 준비한 마음보다 훨씬 더 강하고 날카로웠다. 육아, 살림, 일, 공부로 나 자신을 돌볼 새도 없는데 그 모든 걸 해치고 나가야 하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만, 힘이 다 빠져버린 나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잠을 잘 수 없고 몸에는 이상 반응이 생겼다. 분노와 억울함이 극에 달해 혼잣말을 하기도 했고, 가만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당장 아이들을 웃으며 대해야 하는 것이 버거웠고 남편과의 사이도 점점 뒤틀렸다. 응급상황이었다.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주변에 얘기할 수는 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친구라 해도 나의 암울한 기운을 전해받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너무 뿌리 깊은 문제들이기 때문에 그 긴 이야기를 다 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마도 부모를 욕하는 부정적인 기운 가득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SOS를 한 것이 심리상담사다. 6년 전, 첫째 아이를 임신 상태에서 엄마에 의해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심리 상담사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출산을 한 경험에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위해 조언해줄 사람은 상담사 밖에 없었다. 소통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이 언뜻 서글프지만 계산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좋은 상담사를 찾을 차례.. 예전에 도움받았던 분은 너무 먼 곳에 있었고, 소개받은 분에게 돈과 시간을 썼지만 무언가 뚫리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하신 분을 만났다. 지도에 '심리상담'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정말 많은 사무실이 떴고, 그 중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무실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목소리만으로 신뢰가 갔고, 전화 통화 한 번에 이미 해소가 된 느낌이었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내가 느끼는 어려움을 정확히 파악하고 목표까지 짚어주셨다. 용하다는 건 신기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정말 많이 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 총 6시간째, 비싼 심리학 수업을 받고 있다. 정말 많은 실타래가 풀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무의식'이라는 것이 정말 깊고, 크고, 무서운 것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이 이해되었다. 지금까지 알게 된 한 바를 정리 하면, 무의식 속에 '열등감'은 즉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다. 그 마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거나 깎아내리는 쪽으로 공격하게 된다. 그리고 '불안감'역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다. 불안감이 크면 작은 것에도 크게 반응한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상대를 공격하는 형태로 발현된다. "나한테 이렇게 한 당신 나빠"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난 가까운 사람들이 의해 깎아내려졌고, 나쁜 사람으로 몰렸다.
그리고 나의 문제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고질적으로 자리 잡았던 감정의 억압이다.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싫어도 싫다 말하지 못했던 나는, 더 이상 나 스스로도 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평정심 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장점이 알고 보니 건강하지 못한 정신상태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전부 다 우는데 나만 울지 않거나 다들 웃는데 나만 웃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도대체 난 왜 이러지??" 했던 길었던 의문이 이제야 풀렸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가 시작부터 힘들었던 내 삶이, 이만하면 잘 이겨냈다고 자부했던 과거가, 알고 보니 내 발목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감정을 나도 알지 못하니 당연히 주변에도 표현하지 못했고, 늘 감정을 묻어둔 채 이성과 논리로만 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무언가 기울어져 있어도 참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계속 참기만 했다. 더 이상 눌러 담을 자리가 없어 폭발할 때까지.. 나는 그게 긍정적인 자세인 줄 알았다.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에 나를 편하게 하는 줄 알았다. 이제는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님을, 나의 희생이, 나의 인내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함을 알게 되었다. 또 중요한 점은, 정신과 신체는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무기력하다. 반대로 정신이 건강하면 에너지가 넘친다. 즉 나는 지금 무기력한 상태다.
나와 내 주변이 모두 좋아지려면, 싫은 감정은 싫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 안에 싫은 것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깊이 박혀 있다. 그걸 깨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40년을 이리 살았는데 이제 와서 바뀔 수 있을까. 내가 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자신감을 찾고,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목표인데 아직은 자신이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