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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서 Apr 20. 2020

막장

유럽 영화

요즘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그리 핫하다는데, 하도 말이 많아 귀동냥을 해보니, 이런 막장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재미가 있다고..  그래도 드라마에는  취미가 없는 이어  생각은 없지만, '막장'이라는 단어가 자극이 되어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  영화 중에 막장 스토리가 뭐가 있었는지.. 그러다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우선 막장 순위 단연코 1위는 스페인 영화 '하몽하몽'이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풋풋했던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로, 6명의 부모와 자식뻘의 남녀가 등장하는데 시작과 중간과 끝의 상대역이 계속 바뀐다. 청춘 남녀의 삼각관계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뒤에서는 친구 엄마와 관계를 갖고, 남자 친구의 아빠와 관계를 갖고, 그런 식이다. 막장 중에서도 상 거미줄 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두 명배우 커플이 함께 찍은 다른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도 가족 영화인 듯 하나 사실은 막장이었다. 딸이 납치가 되어 찾으려다 보니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내용이다. 그리고 납치범은 가족 내부에 있었다. 두 사람이 스칼렛 요한슨과 삼각관계를 이룬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영화도 제목에 줄거리가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막장이다. 부제로 '두 여자 다 좋아', '남자 친구 있는 여자도 좋아'까지 합친다면 완벽하다. 설마 이 두 배우는 그런 영화만 골라 찍나? 아니면 이게 스페인의 정서인가..? 싶지만 아직 단정하기엔 표본이 너무 적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프랑스 영화 '8명의 여인들'이 떠올랐다. 여인이 8명이라.. 생각만 해도 난리 법석일 것 같지 않은가. 예쁘고 경쾌하고 굉장한 막장극이다. 8명의 여성에게 하룻밤 사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달린 남자는 결국 아침에 자살을 한다. 여기선 귀여운 막내였던 아가씨가 아주 도발적으로 변신한 '스위밍 풀'도 엄청나다. 글이 잘 풀리지 않아서 한껏 예민해진 저명한 추리소설 작가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줄거리다. 작가는 그 이상한 일들을 은근히 즐기면서 막판에는 자신도 한몫을 하기에 이르는데, 그 대목이 가장 충격적이다. 또 이자벨 위페르의 '피아니스트는' 주인공의 정신병력 기록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쯤에서 이상한 느낌이 왔다. 모두 유럽 영화, 그중에서도 로망스 언어권의 영화들인 것이다. 지리적 위치와 인류와 문화는 상당한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이어서 그간 보아왔던 유럽의 영화들을 한 편 한 편 떠올려보니 좀 놀라웠다. '르누아르'는 모든 장면이 그림처럼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스토리만 보면 누드모델 한 명에게 세 부자가 엮이는 내용이고, '베일을 쓴 소녀'는 가여운 소녀의 수녀원 탈출기지만 한 편으로는 바람 펴서 낳은 딸,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엄마가 강제로 수녀원으로 보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모두 프랑스 영화다. '가장 따듯한 색 블루'는 또 어떤가. 진하고 솔직한 사랑이야기인 건 좋으나, 그렇게 사랑하는데 왜 바람을 피우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몽상가들'이라는 영화는..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겠으나 남매끼리 별 짓을 다하는 설정이 꼭 필요했을까 싶다.

그 외에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은 유럽의 언어로 된 영화들이 몇 편 있다. 이미 자녀가 여럿 있는 어린 미혼의 여성이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새장가를 간 아빠의 집에 찾아가고, 좀 컸다 싶은 아이는 버리기도 하는 영화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의 이야기도 본 적이 있다. 삶을 정리하는 과정은 좋았으나 친할머니와의 묘한 기류와 불임부부를 위해 남편 역할을 대신해주는 설정은 기가 막혔다.

그러고 보니 로망스 언어권으로 생각했던 범위는 그냥 스페인과 프랑스 영화로 좁혀졌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생산된 영화는 내가 보았던 범위 안에서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막장 코드를 발견하지 못했다.

종합하면 '내가 본' 스페인+프랑스 영화는 92.3%의 확률로 막장이다. 단 한편 언급하지 않은 no.1 인생 영화 '그랑블루'가 있기 때문에 100%를 면했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은 듯한 문화권에서 생산된 영화 중에 20번은 족히 보았던 영화가 끼어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감독이랑 배우만 프랑스인이고 언어는 미국, 배경은 이탈리아, 자본도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프랑스와 스페인 영화는 다 그래"라고 말하기엔 본 영화가 많지 않다. 그저 하나의 가설로 세워두고서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생각이다.



+추가

페넬로페 크루즈의 스페인 영화 '귀향'을 보았다. 평이 좋길래 보았는데.. 하몽하몽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등급의 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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