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서 Apr 21. 2020

할머니의 쪽지는 뒷모습

굴비 반찬

'안쓸신잡'을 재밌게 보았었다. 그중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었으니, 유시민 작가가 어렸을 적을 회상하는 부분이었다. 6남매인지라 밤이 되면 아무 데나 누워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가만히 들어서 옮겨주었다는, 그게 좋아서 깨어있었지만 자는 척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희열은 행복한 감정의 눈물을 흘렸다. 엄마 품 안에서 엄마의 목걸이를 입에 물었던 촉감이 기억난다는 황교익 평론가의 이야기로부터 흐르기 시작한 대화 속에서, 나라면 무슨 추억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나는 그들만큼 맛깔나게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야깃거리가 없지는 않다. 모두 친할머니에게 잠시 맡겨졌던 몇 달간에 이루어진 추억이다. 아마도 기억의 시작점이 아닐까 싶은.. 걸음마는 잘했고, 말은 조금씩 했고, 스스로 숟가락질을 시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엄마는 나를 맡기고 가면서 그렇게 울었다고 하는데, 막상 나는 그때의 기억이 나쁘지가 않다. 창호 문에 한복 입은 작은 소녀의 그림자가 계속 지나갔던 인생의 첫 가위눌림이 그때였던 걸 보면 초반에 적응하는 시간이 다소 필요했던 것 같기는 하나, 할머니는 나와 사촌오빠 둘을 정말 정성껏 보살펴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밥상이다. 항상 굴비 반찬이 올라왔던 것 같다.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오빠는 숟가락질을 했고, 나는 할머니께서 일일이 밥에다 굴비 반찬을 얹어 떠먹여 주셨다. 가시를 몇 번 씹으면서도 지금이나 그때나 밥은 참 잘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 오빠 하는 걸 보며 숟가락질에 도전했던 기억이 난다. 커다란 어른 숟가락으로 온몸에 밥풀을 발라가며 먹었다.

그런데 그보다 기억에 남는 건 할머니의 쪽지는 뒷모습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같은 장면이 눈에 맺혔다. 손가락 굵기 정도밖에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가지런히 한 후 묶고 땋아 틀어 올려 비녀를 꽂는 모습. 매일 다른 아침이지만 늘 같은 날인 것처럼 한치의 오차가 없는 그 모습이 무어가 신기했는지 가만히 누워 바라보았다. 수십 년이 배어있는 정갈하고도 익숙한 손놀림, 거울이 필요 없는 장인의 손이었다. 막 잠이 깬 아가가 왜 그걸 그리 바라보았을까 생각하니, 요즘 말하는 힐링이 나에게는 그것이었을 것 같다.


누군가 친절히 멍석을 깔아 길게 말할 기회를 준다면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왔던 그 모습이다. 너무 어렸던 터라 엄마와 아빠의 존재도 잊은 채 할머니를 생명의 보호자로 여기고 잘 적응하고 있던 어느 날! 햇살이 밝고 바람이 맑은 오전이었다. 오후였을 수도 있지만 어쨌는 내 기분은 아침이었다. 대문 앞에서 어른 남녀 둘이 나란히 서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라는 건 한 순간에 알았다. 할머니는 "아빠 엄마다"라고 말해주셨던 것이 확실하나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좋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일 터. 그들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고, 나는 할머니 치맛자락 뒤에 숨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져서 살짝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와 아빠도 그 장면을 똑 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숨어있다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새액 웃더라고.. 지금은 엄마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서 서로 꼴도 보기 싫어하지만, 그때만큼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 었을 테고, 엄마도 아빠도 그 순간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다. 두 분 다 그때를 말하면서 항상 미소를 띠신다. 그리 좋으셨나 보다.

그날은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충분히 행복했고 충분히 사랑받았다. 엄마 젖도 물었다. 엄마 왈 애가 하도 유별나서 5살 때까지 젖을 물렸다고 하는데 그 날이 그 날이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막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