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경험한다는 것: 감각이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에 관하여 #1
경험의 층위들
예술 경험을 단순히 ‘작품을 본다’ 혹은 ‘음악을 듣는다’로 정의하면, 우리는 그 본질의 절반도 포착하지 못합니다. 진짜 예술 경험은 여러 층이 겹쳐진 복합적 사건입니다.
먼저 감각이 있습니다. 캔버스 위의 색, 공간을 채우는 소리, 조각의 질감. 우리의 눈과 귀와 피부가 받아들이는 물리적 자극들입니다.
그 다음 감정이 옵니다. 감각은 곧바로 기분으로 번역됩니다. 슬픔, 설렘, 불안, 평온. 이것은 논리적 판단보다 빠릅니다. 우리는 왜 슬픈지 알기 전에 이미 슬픕니다.
그리고 해석이 뒤따릅니다. “이 작품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작가는 왜 이런 색을 선택했을까?” 우리의 의식적 사고가 개입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미의 형성이 일어납니다. 개인적 기억, 문화적 배경, 사회적 맥락이 모두 합쳐져서, 그 작품은 나만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여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순서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해석을 앞서고, 때로는 의미가 감각을 재구성합니다. 예술 경험은 직선이 아니라 원을 그립니다.
특별한 무엇
그렇다면 예술 경험은 다른 경험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아침 커피를 마시는 것도, 친구와 대화하는 것도, 모두 감각-감정-해석의 과정을 거칩니다.
차이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감각의 과잉. 예술은 의미 전달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감각 정보를 제공합니다. 소설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을 씁니다. 영화는 정보 전달을 위해서라면 불필요한 조명과 구도를 고집합니다. 이 ‘불필요함’이 바로 예술의 본질입니다.
둘째, 의미의 불안정성. 교통 신호등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빨강은 ‘멈춤’입니다. 하지만 로스코의 빨간 캔버스는? 그 의미는 보는 사람마다, 시대마다, 맥락마다 달라집니다. 예술은 고정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미가 고정되기를 거부합니다.
셋째, 자기지시성. 예술은 종종 예술 자체에 대해 말합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회화란 무엇인가를 묻고, 현대 소설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실험합니다. 예술은 세계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우리는 일상적 지각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경험합니다.